만약 주역 책을 하나만 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 이 책은 한문으로 전해오는 괘사나 효사를 번역한 책이 아니라 "주역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내가 찾던 책이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이 책은 주역으로 점치는 법을 설명한다. 이게 무척 좋았다. 점치는 법 설명을 듣고 나서야 "효가 변한다", "괘가 변한다"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을 인용한 설명이 좋아서였다. 융도 공자님처럼 나이 50이 되어 주역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주역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탐독해서 64괘를 모두 외워 적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저자는 융의 이론과 주역의 문장을 엮어 "필연"이 통하는 세계를 설명한다. 이 세상엔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과학의 영역뿐 아니라 우연과 계시로 이루어진 신비의 영역도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만나 주역을 더 공부하고 싶어진 것도 어쩌면 우연이고 계시이고 신비이지 않을까?
절판되어 어렵게 구한 책이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구해 읽은 보람이 있었다. 주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작은 재미와 큰 재미가 있는데, 주역 점을 쳐서 잡다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작은 재미이고, 주역을 관조하며 자연법칙 속의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큰 재미라고 한다. 사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알아가는 것은 큰 재미가 맞다.
주역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좋은 결실을 위해서, 곧 내 삶의 모든 쓰임이 이롭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 쓰임의 행동과 결단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것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주역은 이용하기 좋다. 그것은 이용가치가 있다.
주역은 문왕과 주공이 짓고 (BC 1000년경, 약 3000년전), 공자께서 해설하신 책이다 (BC 500년경, 약 2500년전). 공자께서는 나이 50에 주역의 가치를 깨닫고 그때부터 깊이 공부하셨다고 한다. 주역은 64개의 괘로 세상 모든 일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상징체계다.
처음에는 공자도 보통 사람처럼 쉽게 접했던 것이고, 다만 이 내용이 심오하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이리라. 이때가 바로 공자가 50세 무렵이었던 거라고 생각된다.
먼저 세상의 모든 사물이 8개로 분류되었고 이것이 합쳐져서 64개의 현상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세상의 모든 사물을 표현할 수 있다.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없다. 공자는 주역의 이러한 절대적 논리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64개라는 숫자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세상 모든 일을 64괘로 분류해서 설명하겠다는 주역의 야심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문제를 겪을 때 고려하는 경우의 수가 64개에도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문제를 마주해서 64개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것은 굉장히 깊게 숙고하는 것이다. 어쩌면 64괘의 상징체계는 현실을 보다 더 풍부하게 살펴보라는 가르침일 수 있다.
무한한 사물을 이해하는 데 유한한 괘상을 사용하는 것이 주역의 유용성이다.
세상의 사물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유형별로 나누면 64개밖에 안 된다. 무한히 많은 사물이 고작 64개의 논리로 다 설명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주역의 위력이다.
주역 공부는 사물을 보고 괘상을 알아내는 것과 괘상을 보고 사물을 찾아내는 것 두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지혜와 인격을 닦는 일이다. 그것은 부단한 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주역 공부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역이란... 보통 사람도 해독 가능한 학문이다. 주역은 그리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공자는 자상하게 상황에 따른 처신을 알려 주었지만 괘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는 몹시 아쉬운 일이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괘상을 연구하는 일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바 성인이 사소한 문제까지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2009. 6.30. 주역은 공자님께서 즐겨 읽으셨다는 책이다. 죽기 전, 더 공부하고 싶다고 소원하셨다는 책이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3번이나 닳아 떨어지도록 읽으셨다는 책이다. 주역은 변화에 대한 책이다. 논어에 지혜로운 사람은 강물을 좋아한다는 문장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강물처럼 끊임 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상황을 이해한다. 공자님께서 주역을 읽으신 까닭도 지혜를 닦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3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신영복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심의용의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가 좋았다. 서대원의 '주역강의'는 나쁘지 않았으나 내가 원하던 책이 아니었다. 신영복의 '강의...'는 동양고전 여럿에 대한 저자의 자상한 소개를 담고 있다. 그중 한 챕터로 주역을 다룬다. 분량은 작아도 꽤 유용한 안내를 한다. 심의용의 '주역...'은 64괘중 저자가 추린 20괘에 대한 설명과 번역을 담고 있다. 주역 이외의 다양한 고전을 꿰뚫으며 쉽고 편안하게 설명한다.
논어를 처음 읽을 때, 요즘 책들과 다르게 문장이 파편적이어서 당황했었다. 문장이 앞뒤로 조리 있게 연결되지 않았다. 주역은 논어보다 더 심했다. 문장이 아니라 글자가 파편적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모두 덮는 그물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얼마 안되는 글자로 드넓은 세상의 변화를 덮으려하니 그물이 성길 수 밖에 없다. 매력적인 책이다.
2021. 6.13.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와 심의용 선생님의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를 다시 읽었다. 기억처럼 "강의"는 초심자에게 자상한 설명을 줬다.
주역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만 초심자 입장에서는 전혀 모를 것들이 있다. "효를 맨 아래부터 초효, 2효, 3효, 4효, 5효, 상효의 순서로 읽는다"거나, "6과 9가 음효와 양효를 나타낸다"는 것 등이다. 다른 주역 책에서 "초구", "초육" 같은 말이 아무 설명 없이 등장할 때면 답답했다. 이 책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맨 아래 효가 양효일 경우를 "초구"라 하고, 음효일 경우를 "초육"이라고 하는 거였다.
그리고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괘를 표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독서할 수 있어 좋았다.
메시지가 분명한 잘 짜여진 이야기다. 그래서 믿을 수 없었지만, 실화다.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던 저자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시종일관 사람들 저마다의 기억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교육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을 기초로 저자는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자기의 과거를 재구축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선택한다. 그렇게 저자가 어린 아이에서 성숙한 인격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저자의 결론에 따르면 그것은 변신이었다. 그리고 그 변신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녀가 발견해낸 교육 덕분이었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삶과 사랑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좋았다. 저자의 관점에 의하면 삶이 평생 갈고닦아야 하는 무엇이듯 사랑도 평생 갈고닦아야 완성할 수 있는 무엇이다. 올바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훈련해야 하는데 이 훈련은 평생토록 해야 하는 과업이다.
인간은 미성숙한 단계에서 보다 높은 성숙의 단계로 성장해야 한다. 그게 삶이다. 개인의 성숙은 사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 개인이 자기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삶을 사는 이유는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기술을 갈고닦아, 그리고 사랑의 기술을 갈고닦아 우리가 속한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타인'만'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건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단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내 이웃 모두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궁극적 이상이다.
사랑하는 기술을 익힌 사람은 겸허하다. 타인을 존중한다. 존재만으로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950년대 이후 70년간의 경제학 변천사를 훌륭하게 요약한다. 이 시기, 영국에서는 대처가 집권했고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집권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물결쳤다. 사람들의 일상에 경제학 개념이 침투해서 경제적 효율성이 모든 가치 판단을 지배했다. 신자유주의의 키워드는 '자유 시장', '낙수 효과', '작은 정부'다.
친숙하지 않은가? 태극기 부대 노인들이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외치는 '자유 우파'란 말이 노벨상을 거듭 수상한 비싼 몸값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두뇌에서 나온 말이다. 세계화 덕분에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경제학이 경제 분야를 넘어 사람들의 가치관을 조정하게 된 지금, 우리는 도덕성보다 경제성을 따진다. 그래서 기후 변화 문제를 쉽게 외면하고 불평등 문제를 쉽게 외면한다. 그런 문제는 무능한 정부와 몰인정한 경제학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무관한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냉정하게 말한다. 모든 문제는 우리 책임이다. 우리는 이제 "돈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천박한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후 변화의 경우에는 "미래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라고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은 사회과학의 범위를 넘어선다. 우리도 돈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삼는 천박한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다. 책임감을 갖고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능력이 있다. 경제는 수많은 사람이 행하는 선택과 행위의 합이다. 따라서 경제의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경제 형태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어디서 따로 유머를 배우는 것 같다. 무거운 주제지만 유쾌하게 읽었다.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한글 제목과 원서 제목의 느낌이 조금 달랐다. 한글 제목은 "파도가 치면 서핑을 가겠다"라는 자기 실현적인 느낌인데, 원서 제목은 "내 사람들이 서핑 갈 수 있게 배려하겠다"라는 이타적인 느낌이다. 책을 읽은 뒤 미루어 생각해보면 양쪽 모두 저자의 본모습이다. 저자는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대단히 현실적인 모험가다. 위험한 모험의 순간에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동료를 버리는 선택도 담담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질거나 못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죽음과 직면하는 모험을 거듭하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1960년대에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 당시 그는 한국인 등반가들과 인수봉에 쉬나드A 루트와 쉬나드B 루트라는 암벽등반 길을 개척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일으키면서 한국에서 함께 했던 암벽등반 동료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친구들을 직원으로 초대하는 것은 저자가 일으킨 회사 파타고니아의 전통이다.
파타고니아는 한번 쓰고 버리는 제품이 아니라 오래도록 수선해가며 평생을 쓰고 물려주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성공한 사업가의 성공 스토리다. 세상의 모든 성공 스토리가 그렇듯 가려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환경을 목적으로 사업한다는 그의 철학은 분명 신선했다.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위험한 스포츠를 하면서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계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한계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살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저자의 올곧은 생각과 행동을 느낄 수 있었다. 글에서 느껴진 저자, 조국 장관은 기백있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 형님이었다. 책 중에 삼국지 황개 장군의 고육책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어쩌면 저자가 불의한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맨몸으로 맞섰던 그때도 황개 장군의 고육책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불의한 검찰과 비열한 언론의 실체를 절감하게 해준 저자와 저자의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단박에 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라며 조급하게 안달복달하지 말자. 길게 보고 조금씩 그러나 굳세게 걸어가보자.
민주주의는……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따라서 심화시켜야 할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적인 존재를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필자는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자처한 황개黃蓋를 떠올렸다. 적벽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칠 화공火攻을 성공시키고자 만신창이의 몸이 되었던 오나라 장수 황개 말이다.
왜 검찰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수사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죄 수사에서 보여준 살기 어린 ‘열정’과 ‘집요함’의 반의반만큼도 보여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