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가 당선됐다.
가진 것 없는 미국 서민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세우는 민주당 후보를 버리고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제시하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
데자뷰가 느껴지지 않는가?

2007년 대한민국,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가진 것 없는 한국 서민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세우는 다른 후보들을 버리고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제시하는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이책의 저자는 이런 부조리를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공화당에 표를 던진 미국 서민들이, 결코 무식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정의로왔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정체성에 따라 양심껏 행동한 것이다. 다만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수세력들이, 서민들이 보수적인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하게 인지하게끔, 정교하게 화두를 다듬어 제시한 것뿐이다 (프레임 제시).

예를 들어 '세금구제'란 구호가 있었다. 미국의 보수세력은 대다수의 미국 서민들이 부자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끔 유도했다. 그들은 정당한 노력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살아있는 증거다. 그런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은 그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을 구제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정의로운 서민들은 '세금구제'를 내세우는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의 진보세력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면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금을 줄이면 가난한 서민들을 구제할 수 있는 재정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들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설명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장황한 데이터와 함께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소한(?) '이익'보다는 정의로운(?) '정체성'에 따라 표를 행사했다.
여기서도 데자뷰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에겐 '세금폭탄'이란 화두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실시한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는 선명한 문구로 다듬어 선동했다. 세금폭탄이 대한민국 국민의 2%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며 98%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사실은 아무 상관 없었다. 세금폭탄이 다른 OECD 선진국들의 부동산보유세에 비하면 딱총화약 정도의 위력밖에 안된다는 사실도 상관 없었다. 단지 노무현 정부가 '세금폭탄'이라는 폭정을 행사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노무현 정부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후보가 누구든 상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용감하고도 단호하게 한나라당의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책은 윤리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아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책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정치적인 의도를 효과적으로 설파할 수 있는 기법에 대해 고찰하는 책이다. 나는 지난 대선, 총선,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결과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책을 읽었다. 세상을 보는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2006년 4월 초판 1쇄 발행
도서출판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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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한국사

독후감 2008. 7. 18. 05:59

질문하는 한국사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능동적 역사 읽기

내일을 여는 역사 재단 역음
서해문집 펴냄


고려는 왜 원의 부마국이 되었을까?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주민등록증은 왜 만들어졌을까? 친일파, 민족반역자 처단은 왜 좌절됐을까? ...

평소에 궁금해하던 질문에 답을 주는 역사책이다.
우리 역사는 한이 많은 역사다. 신나게 읽을 수 없고 무던하게 참고 읽어야 하는 역사다. 파란만장하게, 알롤달록하게 수천년 이어온 피곤한 역사다. 언제나 지배층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고, 민초들은 피곤한 삶을 뒹굴었다. 지금이나 수천, 수백년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나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닥 변한 것 같지 않다. 이 책도 한스러운 마음을 삭혀가며 천천히 읽어야했다. 특히 친일파 매국노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어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이어나간 역사는, 무척 힘들었지만, 또박또박 참고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흥미진진한 질문을 흥미진진한 설명으로 풀었다. 재밌는 역사책이다. 이제 서해문집에서 내는 책에는 신뢰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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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언제고 한번 넘어보고 싶은 산이다. 사람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 받고 태어난 이상, 여력이 된다면 언젠가 철학이라는 것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칸트는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짧은 소견으로 무리해서 정리하자면, 동양철학은 관계에 대한 철학이다. 개인의 존재와 현실의 존재를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그위에서 해야할 바를 논의한다. 반면 서양철학은 존재의 철학이다. 개인의 존재를 의심하고 현실의 존재를 의심하며 이에 대해 논의한다. 그래서 동양철학이 논의해온 내용과 서양철학이 논의해온 내용이 다르다.

칸트는 일련의 비판서를 저작하면서 제일 먼저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한계를 구분짓는 작업을 한다. 개인의 존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현실을 개인 인식 속의 환상으로 취급하던 관념론과, 현실의 존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던 경험론 사이에서 철학이 무한 방황할 때, 칸트는 꽤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인간이 이성으로 현실을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에 실린 내용이다.

그린비의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는 한국인 저자 진은영씨가 칸트를 기반으로 새로 지은 책이다.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새로운 저작인데, 그 설명이 쉽고 흡인력 있다. 이책을 계기로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를 섭렵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직 칸트의 원본 저작을 접하지 못했다. 계속 주변 해설서만 맴돌고 있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 계기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책도 하나의 계기가 돼줬다.

글쓴이 진은영
펴낸곳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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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읽었다.
2002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시사성에 있어 현재와 별 차이를 못느끼겠다.
한국 사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나보다.
나름 신문 경제면을 즐겨보고, 경제에 대해 알건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면서 그게 얼마나 용감한 생각이었는지 알게됐다.

독서를 통해 GNP와 GDP가 무엇인지 알게됐다.
그리고, 책 후반에서 꽤 요긴한 공식을 건졌다.
물가= 상수* 통화량/성장률
이란 공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 약속한 7%성장률을 포기한지 오래다.
당분간 노무현 정부 시절보다도 낮은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리라 예상된다.
반면 정부가 참견해서는 안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에 이자율을 낮춰 통화량을 늘리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통화량이 오르면, 물가는 제곱으로 오를 수 밖에 없다.
현물 투자가 요긴할 참이다.
이명박 정부의 남은 4년9개월 동안 금에 대한 투자를 권한다.
경제학은 요긴한 학문이다.

글쓴이 유시민
펴낸곳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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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주사위

독후감 2008. 4. 21. 09:49

일반인에게 통계학이란 학문에 대해 소개하기 위해 쓰여진, 수식이 전혀 없는 수학책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통계학의 발달 과정을 인물 중심으로 소개한다.

책은 통계학 이전의 세계관과 통계학 이후의 세계관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통계학 이전의 세계관은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계측도구가 발달하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계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과학 공식이 발달하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통계학 이후의 세계관은 확률론적 세계관이다. 계측도구가 아무리 발달해도 오차 없는 실험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됐고, 과학 공식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확률적인 분포일뿐 절대적인 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 수학이란 학문이 과학과 철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책에 등장하는 통계학의 영웅들은 순수하게 숫자만을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과학분야에 수학적 이론을 적용하려 시도했던 과학자들이었다. 서문에서 과학자들이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나온다. 그 이유는 그 분야가 재미있어서라고 한다 (단지 재미 있어서일 뿐이라고 한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번득이는 두뇌를 가진 그들이, 단지 재미 때문에 한분야에 몰두하기로 결심하는 가치관과, 또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사회구조가, 지금 선진국들이 갖추고 있는 과학 문명의 뒷배경일 것이다. 오버일지 모르겠지만, 밥벌이를 기준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그리고 그래야 하는 우리나라 젊은 두뇌들의 현실이 안타까왔다.

이책은 짧은 챕터로 나뉘어 있고 각 챕터마다 한 인물의 생애와 통계학적 업적을 소개한다. 어지간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번역자 스스로 통계학에 대해 지식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저자의 의도를 잘 전달해준다. 이정도의 번역서를 만난다는건 드문 행운이다.

데이비드 살스버그 지음
최정규 옮김
도서출판 뿌리와 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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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해 동안 읽은 논어 중에서 최고였던 책이다. 책값이 꽤 하지만 정말 좋은 논어 해설서다. 남회근 선생은 대만 사람이다. 논어에 적힌 글이 그에겐 국어다. 이 책은 남회근 선생께서 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누군가 기록해서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 강의에 참석해서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다. 여러 가지 논어 주변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서 논어에 대해 풍성하게 해설한다. 무엇보다 논어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 사물, 이론에 대해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독한 구석 없이 순한 책이다. 지금은 회사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다시 읽고 있다. 오랫동안 같이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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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독후감 2008. 1. 25. 14:16

88만원 세대
우석훈 저, 박권일 공저

 

 

촌스런 표지, 촌스런 제목의 책이다. 베스트셀러다. 오랜 고민을 통해 축적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이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제 인식의 틀, 구체적이면서도 공감가는 대안... 이책이 베스트셀러라는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써 자랑스럽다.

내용에는 대한민국 경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인 20대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담겨있다. 특히나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증가 이유, 그리고 사교육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많이 와닿았다.

내 아이에게는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물려주고 싶은데, 거대 시스템에 파묻힌 힘없는 개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게 안타깝다. 꽤 우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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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고 있다

독후감 2007. 12. 10. 12:58

2007년 올해, 논어를 읽고 있다.
회사 다니며 동양 고전을 무척 많이 읽는 사람을 알게됐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던가?
논어, 유교, 공자란 주제가 궁금했지만 딱히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기특하게도 올해 초에 논어를 일년 독서의 주제로 세웠다.

하지만 논어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것 같다.
논어에 대해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지만
'이제 논어를 조금 알겠어'하는 만족감이 들질 않는다. 읽어도 읽어도 바닥이 없다.
곧 다가올 내년에도 논어를 읽어야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고민하는 이유는 노자도 읽고 싶고, 칸트도 읽고 싶기 때문이다.
내 시간이 빈약해서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암튼, 공자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키가 2미터 넘는 거구였다.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래를 한번 더 시키고 자기도 따라 불렀던 멋장이다.
시를 읽지 않는 아들에게
"그렇게 좋은 시를 왜 읽지 않느냐?"며 권했던 낭만파다.

공자를 빛내는 그의 제자들도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언변 좋고 착한 제자 자공,
뚝심 있고 정의로운 자로,
빛나는 재능으로 공자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으나 단명한 안회,
공자로 부터 종단의 도통을 물려받아 죽을 때까지 전전긍긍 학문에 매진한 증삼.
매혹적인 인물들의 매혹적인 시대.
논어는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올해가 가기전에 또 한권의 논어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독후감을 올릴 참이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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