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8.29.

이 책을 읽고, 글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인류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정치 경제 시스템에 대해 고찰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무한 생산과 무한 소비를 추구한다. 유한한 세상에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다보니 파국을 피할 수 없을텐데,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지켜 보기만 한다. 이 책은 그 이유를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경제서? 아니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은 프로이트의 후예이며 정신분석 학자다. 정치서? 아니다. 이 책은 인간과 사회의 본성에 대한 연구 논문이다. 철학, 신학, 과학을 넘나들며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다. 지극히 사실적인 자료를 근거로, 지극히 논리적인 방법으로, 지극히 과학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기독교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기독교는 예수를 특별한 영웅으로 부각시킨다. 예수를, 사랑을 실천하는, 영웅적 존재로 부각시킨다. 그렇게 예수는 우상이되고, 평범한 개인은 예수로부터 소외된다. 즉, 예수를 닮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대신, 신앙을 소유함으로써 구원을 얻으려 한다. 탐욕스러운 생활을 계속하더라도,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소유하면,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현대 기독교는 이런 소외를 방조할뿐아니라 조장한다. 그래야 개인에게서 유리된 예수를 독점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카롭지 않은가?

저자는 인간의 소외, 다시 말해 인류의 방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저자는 인류가 파국을 피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 자기 생각을 한다고 착각한다. 혹시나 그 생각이 매스컴을 통해 세뇌된 남의 생각이라고 의심해본 적은 없는가? 저자는 인류가 제정신이라면, 진정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분명히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현실의 부조리를 넋놓고 방관한다면, 인류는 "멸망해도 싼" 존재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범우사에서 출간된 번역서를 몇 년 동안 표지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다. 원서 제목은 "To Have or To Be". 얇고 가격도 싼, 바람직한 책이다. 번역은 무난하다. 초반 번역은 감동스러울 정도로 충실한데, 마지막 장 부근의 번역이 다소 불만스럽다. 그래도 그정도면 훌륭하다. 인생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2023.11.27.

나의 삶은 무엇으로 평가될까? 나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살며 모아 온 소유물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꾸면 사회의 현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1976년에 출간된 책이다. 하지만 오래된 책이라고 독서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은 아직도 적절하며 여전히 살아 있다. 읽을 때마다 태도를 바로잡게 만드는 좋은 책이다.

범우사에서 펴낸 책도 까치에서 펴낸 책도 모두 번역 좋았다 (번역 별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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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임마누엘 칸트(1724~1804) 지음
백종현 옮김
아카넷 펴냄

 

19개월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있을까?'였다. 이 책을 읽은 보람도 그 질문이었다. 이제 철학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철학은 가치에 대한 고민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질 리 없지만, 이 책을 읽은 시간은 '무엇이 중요한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판단력비판』은 1790년, 칸트 나이 66세에 출판됐다. 아카넷 백종현 번역은 역자의 '판단력비판 해제' 100쪽, 판단력비판 2판의 번역 450쪽, 판단력비판 1판의 '서론' 덧붙임 70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2판 번역이 끝나는 지점에 1판의 서론이 덧붙여져 있는데, 독서를 마무리하면서 내용을 되돌아보는 데 도움 됐다. 역자의 배려라고 느꼈다.

 

칸트의 생각에 영향을 준 그 시대 인물들을 연표로 그려 보았다.

칸트는 뉴턴 역학이 제시하는 물리법칙의 확실함에 매료됐던 듯 하다. 그리고 수학에 대해서도 깊은 조예를 보이는데 이는 오일러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책 곳곳에서 동시대의 철학자였던 흄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반론을 펼친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천재성에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책 어딘가에 천재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챕터가 있었다.

 

책을 사서 쟁여둔 지 10년 만에 칸트의 비판 시리즈를 완독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인간의 지성이 현실 속에서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지 비판한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무엇을 의욕 해야 하는지 비판한다. 『판단력비판』에서는 인간의 판단력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비판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의욕 해서 현실화시키는 존재다.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존재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다.

p559 §91
우리는 도덕법칙이 우리에게 궁극목적으로 부과하는 것에, 그러니까 우리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에 맞게 우리가 처신하는 한에서만, 우리 자신을 그러한 궁극목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10년 전 이 책을 살 때는 '절판되기 전에 쟁여두자'는 생각으로 샀다. 하지만 이 책은 쇄를 거듭하면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다. 이런 좋은 번역서가 만들어지고 또 잘 팔린다는 사실에서 칸트 철학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단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200년 넘는 시간을 넘어 칸트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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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만나는 논어

공자, 안 될 줄 알면서 하는 사람

 

김경일 글,그림
임종수 감수
도서출판문사철 펴냄

 

사실 논어는 아주 평이한 언어로 기록된 친절한 책이다. 하지만 처음 읽자면 불친절하다고 느끼게 된다. 넘어야 할 벽이 있기 때문이다. 논어에는 시공간과 인물에 대한 소개가 없다. 갑작스러운 시공간에서 누군지 모를 인물들이 난데없는 대화를 펼친다.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인물들이 나눈 대화인지에 대해 약간만 더 소개해 줬어도 이해하기가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려 2,500년 전에 대나무 죽간에 기록한 책이라서 그렇다. 매체의 한계 때문에 글자를 아끼고 아껴서 뼈대만 조각해 전했다.

이 책은 논어의 뼈대에 스토리의 살을 입혔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이다. 문장에 대한 설명도 좋았고 개성 있는 그림체도 좋았다. 독서를 통해 공자님과 제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논어 속 문장에 대한 번역도 흠잡을 데 없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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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하게 익히고 두고두고 들춰보는

주역 입문 강의

한 권으로 읽는 『주역』의 모든 것

 

고은주 지음
우응순 감수
북튜브 펴냄

 

정성스럽게 지은 좋은 책이다. 이론편과 실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론편은 주역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고, 실전편은 64괘의 괘사와 효사를 빠짐없이 싣고 있다. 책 제목처럼 두고두고 자주 들춰보게 된다.

올해 2월 휴가 때 저자가 직접 강의하는 하루 세미나를 들었다. 정말 열정적으로 쉽고 자세하게 끌어주셨다. 네이버 카페 "인문학당 상우"에 가끔 뜨는 세미나 공고를 보고 참여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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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과학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터미네이터는 정말 1984년으로 갈 수 있을까?

 

김필영 지음
들녘 펴냄

 

유튜브에서 '5분 뚝딱 철학'이라는 채널을 좋게 봤다. 철학을 짤막하게 요약해주는 채널이다. 그 채널의 주인장이 이 책의 저자다. 머릿말에서 저자가 자기 소개를 한다. 저자는 50이 넘은 샐러리맨이라고 한다. 일하면서 짬짬이 철학을 공부했고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한 이유는 그냥 재밌어서였다고 한다. 같은 샐러리맨으로서 현업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존경스럽다.

책을 고른 이유는 목차에 직전 독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에서 얼핏 봤던 '현재주의'와 '영원주의'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였다. 현재주의, 영원주의, 블록우주 (Block Universe) 개념을 알게 돼서 만족스럽다.

현재주의(Presentism).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이론.
영원주의(Eternalism). 과거와 미래도 현재와 같이 존재한다는 이론.
영원주의의 이미지는 과거/현재/미래가 벽돌을 쌓아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영원주의를 블록우주(Block Universe) 이론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던 얘기와 저자가 하고 싶던 얘기가 달랐다. 나는 시간의 본질에 대한 과학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저자는 논리학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시간에 관한 저자 나름의 사고실험을 길게 펼치는데 따라가기 힘들었다.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만약 기회가 있어 솔직한 느낌을 얘기한다면 저자는 빙긋 웃으며 대꾸할 것이다.

그럴 수 있죠.

그럴 수도 있다. 어긋나는 만남도 있을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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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인간의 법칙

64괘에서 배우는 인간과 자연의 지혜

 

이창일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만약 주역 책을 하나만 읽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겠다. 이 책은 한문으로 전해오는 괘사나 효사를 번역한 책이 아니라 "주역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책이다. 내가 찾던 책이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이 책은 주역으로 점치는 법을 설명한다. 이게 무척 좋았다. 점치는 법 설명을 듣고 나서야 "효가 변한다", "괘가 변한다"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고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을 인용한 설명이 좋아서였다. 융도 공자님처럼 나이 50이 되어 주역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주역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탐독해서 64괘를 모두 외워 적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저자는 융의 이론과 주역의 문장을 엮어 "필연"이 통하는 세계를 설명한다. 이 세상엔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과학의 영역뿐 아니라 우연과 계시로 이루어진 신비의 영역도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만나 주역을 더 공부하고 싶어진 것도 어쩌면 우연이고 계시이고 신비이지 않을까?

절판되어 어렵게 구한 책이다.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구해 읽은 보람이 있었다. 주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작은 재미와 큰 재미가 있는데, 주역 점을 쳐서 잡다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작은 재미이고, 주역을 관조하며 자연법칙 속의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큰 재미라고 한다. 사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알아가는 것은 큰 재미가 맞다.

 

주역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좋은 결실을 위해서, 곧 내 삶의 모든 쓰임이 이롭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내 쓰임의 행동과 결단이 온전하고 바람직한 것이 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주역은 이용하기 좋다. 그것은 이용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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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마지막 공부

운명을 넘어선다는 것

 

김승호 지음
다산초당 펴냄

 

주역은 문왕과 주공이 짓고 (BC 1000년경, 약 3000년전), 공자께서 해설하신 책이다 (BC 500년경, 약 2500년전). 공자께서는 나이 50에 주역의 가치를 깨닫고 그때부터 깊이 공부하셨다고 한다. 주역은 64개의 괘로 세상 모든 일을 이해하는 흥미로운 상징체계다.

처음에는 공자도 보통 사람처럼 쉽게 접했던 것이고, 다만 이 내용이 심오하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이리라. 이때가 바로 공자가 50세 무렵이었던 거라고 생각된다.
먼저 세상의 모든 사물이 8개로 분류되었고 이것이 합쳐져서 64개의 현상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세상의 모든 사물을 표현할 수 있다.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없다. 공자는 주역의 이러한 절대적 논리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64개라는 숫자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세상 모든 일을 64괘로 분류해서 설명하겠다는 주역의 야심이 터무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문제를 겪을 때 고려하는 경우의 수가 64개에도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문제를 마주해서 64개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것은 굉장히 깊게 숙고하는 것이다. 어쩌면 64괘의 상징체계는 현실을 보다 더 풍부하게 살펴보라는 가르침일 수 있다.

무한한 사물을 이해하는 데 유한한 괘상을 사용하는 것이 주역의 유용성이다.
세상의 사물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유형별로 나누면 64개밖에 안 된다. 무한히 많은 사물이 고작 64개의 논리로 다 설명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주역의 위력이다.

 

주역 공부는 사물을 보고 괘상을 알아내는 것과 괘상을 보고 사물을 찾아내는 것 두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지혜와 인격을 닦는 일이다. 그것은 부단한 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다. 주역 공부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역이란... 보통 사람도 해독 가능한 학문이다. 주역은 그리 어려운 학문이 아니다.
공자는 자상하게 상황에 따른 처신을 알려 주었지만 괘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는 몹시 아쉬운 일이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괘상을 연구하는 일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바 성인이 사소한 문제까지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람은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이로써 인격이 향상될 수 있다.
주역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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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독후감 2021. 6. 13. 11:30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
심의용 지음
살림 펴냄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2009. 6.30.
주역은 공자님께서 즐겨 읽으셨다는 책이다. 죽기 전, 더 공부하고 싶다고 소원하셨다는 책이다. 책을 묶은 가죽끈이 3번이나 닳아 떨어지도록 읽으셨다는 책이다. 주역은 변화에 대한 책이다. 논어에 지혜로운 사람은 강물을 좋아한다는 문장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강물처럼 끊임 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상황을 이해한다. 공자님께서 주역을 읽으신 까닭도 지혜를 닦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3권의 책을 읽었다. 그중 신영복의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과 심의용의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가 좋았다. 서대원의 '주역강의'는 나쁘지 않았으나 내가 원하던 책이 아니었다.
신영복의 '강의...'는 동양고전 여럿에 대한 저자의 자상한 소개를 담고 있다. 그중 한 챕터로 주역을 다룬다. 분량은 작아도 꽤 유용한 안내를 한다.
심의용의 '주역...'은 64괘중 저자가 추린 20괘에 대한 설명과 번역을 담고 있다. 주역 이외의 다양한 고전을 꿰뚫으며 쉽고 편안하게 설명한다.

논어를 처음 읽을 때, 요즘 책들과 다르게 문장이 파편적이어서 당황했었다. 문장이 앞뒤로 조리 있게 연결되지 않았다. 주역은 논어보다 더 심했다. 문장이 아니라 글자가 파편적이었다. 세상의 변화를 모두 덮는 그물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얼마 안되는 글자로 드넓은 세상의 변화를 덮으려하니 그물이 성길 수 밖에 없다. 매력적인 책이다.

 

2021. 6.13.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와 심의용 선생님의 "주역, 마음속에 마르지 않는 우물을 파라"를 다시 읽었다. 기억처럼 "강의"는 초심자에게 자상한 설명을 줬다.

주역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만 초심자 입장에서는 전혀 모를 것들이 있다. "효를 맨 아래부터 초효, 2효, 3효, 4효, 5효, 상효의 순서로 읽는다"거나, "6과 9가 음효와 양효를 나타낸다"는 것 등이다. 다른 주역 책에서 "초구", "초육" 같은 말이 아무 설명 없이 등장할 때면 답답했다. 이 책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맨 아래 효가 양효일 경우를 "초구"라 하고, 음효일 경우를 "초육"이라고 하는 거였다.

그리고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괘를 표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쓸모를 생각하지 않고 독서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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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박언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대립면의 꼬임"을 설명하던 도덕경이 자주 떠올랐다

한 해가 지날 즈음, 독서했던 책들을 되돌아보면 뭔가 하나로 엮여서 줄거리를 만드는 때가 있다. 이 책도 얼마전 읽었던 도덕경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과 엮여서 어떤 줄거리를 만들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도덕경이 말하는 도 (道, 대립면의 꼬임) 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의 합리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존재하는 세계 사이의 "대립과 꼬임"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자주 인용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회귀"가 연상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방인과 같은 해 (1942년) 에 출간된 이 책에서 니체가 자주 인용된다. 그것도 아주 열광적으로 인용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 거의 마지막 문장, 민음사, 김화영 번역)

 

 

카뮈 30살에 지은 책

인간은 언젠가 자기가 서른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책 표지에 실린 카뮈의 사진이 잘생겼다고 느꼈다. 잘생긴 서른 살 청년의 진지한 고민과 깊은 사유를 들었다. 서른 살 카뮈는 나보다 젊었지만 나보다 깊었다.

 

 

문학책이 아니라 철학책

카뮈는 자신의 철학적 고민을 치밀하게 추론하고 설명한다. 그런 카뮈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책세상 김화영 번역 (번역 별 3.0 ★★★) 과 열린책들 박언주 번역 (번역 별 3.0 ★★★) 을 번갈아 읽었다. 번역이 불만스럽더라도 만족스럽게 독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권의 번역서를 동시에 읽으면 된다. 만족스러웠다.

 

 

첫 문장이 강렬하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김화영 번역)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박언주 번역)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의 시지프들에게 카뮈가 말한다.
"버텨라. 행복한 당신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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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펴냄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펴냄

 

지난 독서는 도덕경이었다. 도덕경을 읽을 때 '차라투스트라...'가 떠오르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거피취차 (去彼取此)', 즉 '저쪽(피안)'의 삶을 추구하지 말고 '이쪽(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라고 말할 때, 획일된 가치체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어린이가 돼라'고 비유할 때 등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차라투스트라...'를 읽기로 했다. 무려 2개의 번역본을 동시에 번갈아 읽는 사치를 누려봤다. 2개의 번역본을 함께 읽는 경험은 아주 좋았다. 정동호 옮김의 '차라투스트라...'는 책세상 니체전집 중 한 권으로 표준번역본이라 할 만한 안정감이 있었다. 박성현 옮김의 '짜라두짜...'는 문장이 과격할 정도로 선명해서 이해가 잘됐다. 두 개 번역본의 살짝 어긋나는 표현을 통해 니체의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었다.

 

니체는 가치를 규정하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이제 사람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걸 모르는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선언한다. 니체는 선언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니체의 문장은 불친절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불친절한 철학자의 말에 귀기울여온 이유가 무얼까? 아직 좋은 줄 모르겠다. 묘하다.

 

두 책 모두 번역 좋았다 (책1, 책2).

 

제자들! 나는 이제 혼자 가.
자네들도 각자 혼자 가도록!
... 평생 학생으로만 남아 있다면 선생한테 아주 몹쓸 짓을 하는 것이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박성현)
진정, 나는 마비되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겁쟁이들을 자주 비웃어주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정동호)
무거운 것도 모두 가볍게 만들어라.
인간의 몸은 모두 춤꾼으로 만들어라.
인간의 정신은 모두 새처럼 날쌔게 만들어라.
... 노래해! 말로 떠들지 말고!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박성현)
그것이 그대의 영예다. 그대가 위대함을 추구해왔다는 것, 그것이 그대의 영예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주기도 하지. 그대는 위대하지 않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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