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강순희,유시민,김세라 지음
은빛 펴냄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다. 그는 독재의 명분이 필요할 때마다 공안 사건을 조작했다. 인혁당 사건도 그중 하나다.
박정희는 대법원 확정판결 바로 다음날 새벽, 사형선고를 받은 여덟 명을 삼십 분마다 하나씩 사형대에 세웠다. ... 대법원 심리는 정치적 살인에 합법의 너울을 씌워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책 5% 위치)
2차 사건 사형수들의 가족은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면회를 하지 못했다. 포승에 묶인 채 재판을 받으러 오가는 모습을 본 것이 전부였다. (책 44% 위치)
강순희 여사는 남편 우홍선 씨를 아무 조건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 신랑하고 데이트할 때가 제일 좋았지. 범어사에 갔을 때.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나 하나의 사랑'이야. 나 하나의 사랑...
스물한 살에 스물네 살 우홍선과 범어사에 놀러 갔던 날,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아흔세 살 강순희는 나지막이 그 노래를 불렀다. (책 8% 위치)
그녀는 남편을 죽인 박정희와 당시 대법원장 민복기를 용서하지 않았다.
민복기(1913~2007)는 이완용의 사돈이자 자신도 일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민병석의 아들로 경성에서 태어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경성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부친과 나란히 올랐던 민복기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박정희가 자행한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책 58% 위치)
그녀는 남편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 2007년 수십 년 만에 법원은 인혁당 희생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 나오면서 막 울었어. 그런데 기자들이 이겼는데 왜 우냐고, 그 따위로 묻는 거야. '이겼으니까 더 억울하지!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랬는데, 아니 어떻게 기자들이 그렇게 뭘 몰라? (책 84% 위치)
그녀가 회고록을 쓴 이유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역사가 이렇게 흘러왔다는 걸, 국민들이 이렇게 고생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나는 어려서 하얼빈에서 살았고, 이북에서 공부했고, 전쟁나서 피난 왔고, 여기 와서 또 난리가 나서 남편이 죽고, 그랬는데 나중에 다시 무죄 받아서 재단도 만들었다, 거기까지요. (책 6% 위치)
2024년 12.3 계엄 사태를 겪으며 인구에 자주 회자하던 말이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이 글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입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 96% 위치. '산 자를 살리는 기록'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에필로그)
그녀는 지난 삶을 '사랑을 많이 받아 행복했다'고 회고한다. 나도 행복한 아흔세 살에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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