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

 

고병권 지음
소명출판 펴냄

 

좋은 책인데 구하기 어려웠다. 종이책은 절판되었고, 전자책도 교보 eBook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자책 편집이 독서를 방해할 만큼 엉성했다. 제목이 중간에 잘리는 경우도 있었고, 몇 페이지에 걸쳐 본문 없이 주석만 있는 경우도 있었다. 도처에 띄어쓰기가 무너진 곳이 있었다. 책 20% 분량을 차지하는 2부는 실망스러웠다. 맥락이 다른 이야기를 억지로 덧붙인 느낌이었다.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는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다듬어서 읽기 좋게 재출간되면 좋겠다.

 

제목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은 해석의 다양성과 행위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 같다. 생명의 무궁한 시행착오가 떠올랐다. 니체는 "차이"를 강조했다. 차이에 대한 인정이, 차이를 불편해하지 않는 태도가 삶을 긍정하는 바탕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긍정의 철학자이자 격려의 철학자였다. 삶을 사는 우리를 목청껏 응원한다. 남들과 다른 나의 해석을 주장하라고 격려한다. 삶을 긍정하라고, 살아남으라고 격려한다.

귀족들은 자신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와 달리 노예는 타자에 대한 부정과 비난에서 시작하고 있다.
(책 21% 위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생명 자체는 권력의지다.
(책 53% 위치)

 

읽고 보니 니체 철학은 분석할 대상이 아니라 공감할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논리적인 설명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선명한 선언에서 청량함을 느껴야 하는 거였다.

 

"영원회귀"에 대해 깊게 느낀 바가 있었다.

삶이 그 슬픔까지 반복되어도,
그 삶 너머에 다른 피안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어도,
지금 여기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한 번 더!"라고 외칠 수 있는가?
그 영원한 회귀를 놀이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자기만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가?

순간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다. 순간이라는 입구에서 하나의 기나긴 길은 뒤로 달리고, 다른 길은 앞으로 달린다. 현재와 과거와 미래는 순간이라는 출입구 안에서 공존한다.
(책 60%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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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민음사 펴냄

 

작가는 다정다감하고, 말 잘하고, 그러면서도 여린 사람인 것 같다. 단편집 곳곳에서 그런 느낌이 배어난다. 하지만 그의 자전적 소설 "도쿄 팔경"을 읽고 질려 버렸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현실에서 그를 만났다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피했을 것이다.

 

때로는 작가의 됨됨이와 문학적 성취가 별개인 경우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렇다. 그의 됨됨이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작품은 재밌다. 이번 독서 덕분에 "데카당(퇴폐적 탐미주의자)"이라는 말을 알게 됐다. 그는 데카당이었다.

 

이 나이(스물넷)가 돼선, 어디가 틀렸다고 들어도, 저는 이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여치' 편)
기억해 두는 게 좋아. 넌, 이미 청춘을 잃었어. 제법 점잔 빼는 얼굴을 한 삼십 줄 남자다.
('도쿄 팔경' 편)
반한 게 잘못이냐?
('카치카치산' 편)

 

괜찮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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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 교수의 철학 에세이

니힐리스트로 사는 법

 

문성훈 지음
이소노미아 펴냄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은 다 읽어 보고 싶은 욕심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몇 번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투스트라..."엔 선언만 있고 설명이 없었다. 이토록 불친절한 철학자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를 이해하기에 좋은 텍스트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니체 해설서를 보기로 했다.

 

숨 가쁘게 읽었다. 흡인력이 엄청났다. 책은 니체가 하고 싶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주 쉽게 설명한다. "신은 죽었다"는 말에서 "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설명해 준다. 세상은 무의미하다. "신"은 죽었다. 이제 남은 건 의미 없는 세상을 부정할지 긍정할지에 대한 나의 선택뿐이다. 책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인용한다.

(노인은)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그것도 사흘 밤낮을 청새치와 사투를 벌였다.
노인은 망망대해에서 오히려 자신과 만났고, 삶의 의지를 확인한 것이다.
노인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고 자기 자신에게 외쳤다.
인생은 행복하면 살고, 불행하면 죽는 것이 아니다.
노인은 ... 다시 바다로 나갈 계획을 세운다.

 

좋은 책이다. 매 챕터를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구성도 좋았다. 니체가 조금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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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유시민 지음
돌베개 펴냄

 

문재인, 이해찬, 김대중 회고록을 읽고 나서 한국 현대사를 총정리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정치인이 기억하는 역사와 작가가 정리하는 역사는 맛이 달랐다. 충분한 정리가 됐다. 자신에게 남은 수명을 계산하며 남은 인생을 계획하는 깍쟁이 같은 인생 선배의 모습이 신선했다. 따라 해 볼 작정이다.

통계청의 생명표를 보니, 1959년생 돼지띠 남자는 앞으로 평균 21년 정도 더 살 것이라고 한다. 내게는 그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면서 오늘을 만들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역사를 지켜봅시다.

 

그간 읽은 회고록과 역사책 모두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정책'을 긍정했다. 북한을 섬멸할 대상이 아니라 통일할 상대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입장에서 독일 통일의 역사와 서독이 펼쳤던 '동방정책'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살펴봐야겠다.

남북관계의 틀을 바꾼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고 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노태우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개선했고 진지한 태도로 옛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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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강순희,유시민,김세라 지음
은빛 펴냄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다. 그는 독재의 명분이 필요할 때마다 공안 사건을 조작했다. 인혁당 사건도 그중 하나다.

박정희는 대법원 확정판결 바로 다음날 새벽, 사형선고를 받은 여덟 명을 삼십 분마다 하나씩 사형대에 세웠다. ... 대법원 심리는 정치적 살인에 합법의 너울을 씌워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책 5% 위치)
2차 사건 사형수들의 가족은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면회를 하지 못했다. 포승에 묶인 채 재판을 받으러 오가는 모습을 본 것이 전부였다.
(책 44% 위치)

 

강순희 여사는 남편 우홍선 씨를 아무 조건 따지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 신랑하고 데이트할 때가 제일 좋았지. 범어사에 갔을 때.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나 하나의 사랑'이야. 나 하나의 사랑...
스물한 살에 스물네 살 우홍선과 범어사에 놀러 갔던 날,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아흔세 살 강순희는 나지막이 그 노래를 불렀다.
(책 8% 위치)

 

그녀는 남편을 죽인 박정희와 당시 대법원장 민복기를 용서하지 않았다.

민복기(1913~2007)는 이완용의 사돈이자 자신도 일제 귀족 작위를 받았던 민병석의 아들로 경성에서 태어나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경성지방법원 판사가 되었다. ...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부친과 나란히 올랐던 민복기의 이름은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박정희가 자행한 '사법살인'의 하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책 58% 위치)

 

그녀는 남편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 2007년 수십 년 만에 법원은 인혁당 희생자 8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 나오면서 막 울었어. 그런데 기자들이 이겼는데 왜 우냐고, 그 따위로 묻는 거야. '이겼으니까 더 억울하지! 이렇게 죄 없는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랬는데, 아니 어떻게 기자들이 그렇게 뭘 몰라?
(책 84% 위치)

 

그녀가 회고록을 쓴 이유는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역사가 이렇게 흘러왔다는 걸, 국민들이 이렇게 고생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나는 어려서 하얼빈에서 살았고, 이북에서 공부했고, 전쟁나서 피난 왔고, 여기 와서 또 난리가 나서 남편이 죽고, 그랬는데 나중에 다시 무죄 받아서 재단도 만들었다, 거기까지요.
(책 6% 위치)
2024년 12.3 계엄 사태를 겪으며 인구에 자주 회자하던 말이 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이 글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억'입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 96% 위치. '산 자를 살리는 기록'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에필로그)

 

그녀는 지난 삶을 '사랑을 많이 받아 행복했다'고 회고한다. 나도 행복한 아흔세 살에 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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