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자왈
居上不寬 거상불관
爲禮不敬 위례불경
臨喪不哀 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 오하이관지재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관용스럽지 못하고
예를 행함에 공경함이 없고
상을 겪음에 슬퍼함이 없다면
내 어찌 그런 모습을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관용, 공경, 슬픔 같은 본질이
정치, 예의, 상례 같은 형식의 근본이다.
이로써 팔일편이 끝난다.
子曰 자왈
居上不寬 거상불관
爲禮不敬 위례불경
臨喪不哀 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 오하이관지재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관용스럽지 못하고
예를 행함에 공경함이 없고
상을 겪음에 슬퍼함이 없다면
내 어찌 그런 모습을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관용, 공경, 슬픔 같은 본질이
정치, 예의, 상례 같은 형식의 근본이다.
이로써 팔일편이 끝난다.
子謂韶 자위소
盡美矣 진미의
又盡善也 우진선야
謂武 위무
盡美矣 진미의
未盡善也 미진선야
공자께서 韶(소)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또 지극히 선하다.
武(무)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그러나 지극히 선하지는 못하다.
韶(소)는 순임금의 음악이다.
武(무)는 주나라의 시조 무왕의 음악이다.
의봉인(儀지역의 국경 관리인)이 공자를 뵙고자 청하며 말했다.
군자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내가 만나뵙지 못한 분은 없었오.
종자가 그를 공자께 인도했다.
그가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 어찌 그리 근심하십니까?
천하가 무도한지 오래됐으나,
이제 하늘이 공자님을 목탁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자께서 이상을 펴기 위해 천하를 떠돌다 곤궁에 처하셨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한다.
공자라는 커다란 인물을 기록한 논어에는 이름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은자와 현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볼품없어 보이지만 인생, 배움, 깨우침을 귀하게 여겼던 사람들이다. 의봉인도 인생, 배움, 깨우침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공자께서 노나라의 태사악(음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시작할 때
흩어진 여러 소리들이 합해져서,
끝나갈수록
조화되고,
명료해지고,
찬란해집니다.
이렇게 한곡이 완성됩니다.
공자께서는 음악을 무척 좋아하셨다.
악기도 좋아하셨고,
노래도 좋아하셨다.
멋장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이 작았다.
누군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관중은 부인이 셋이나 있었고,
집안 일을 보는 사람들도 일을 겸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찌 검소했다 하겠는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임금이 수색문(집 안에 두는 낮은 담장,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수색문을 썼고,
임금이 다른 임금을 맞아 반점(술잔 받침, 역시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반점을 썼다.
관중이 예를 알았다 하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명재상이다. 공자님보다 100여 년 전 사람이다.
집안에서 팔일무를 쓰는 계씨의 예의 없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이번 장의 주제는 禮(예)를 바로 잡아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관중은 당시 전설적인 명재상이었다. 공자께서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까닭은 관중의 행적을 빌어 스스로의 세도를 정당화 했던 당시 노나라 권문들을 비판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애공이 宰我(재아)에게 社(사)에 대해 물었다.
재아가 이에 대답했다.
하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심었습니다.
주나라는 栗(율, 밤나무)을 심습니다.
이것은 백성으로하여금 '전율(두려움)'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공자께서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다된 일이니 말을 않겠다.
끝난 일이니 충고하지 않겠다.
지난 일이니 나무라지 않겠다.
宰我(재아)는 宰予(재여)를 말한다.
宰予(재여)는 공자님의 제자로 공자님보다 29세 어렸다. 성은 宰(재), 이름은 予(여), 자는 子我(자아)다. 지혜와 언변이 뛰어났으나 태도가 성실하지 못해 공자님의 꾸지람을 듣는다.
社(사)는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社稷(사직)이라고도 한다.
어린 왕의 질문에 栗(밤나무 율)의 음을 빌어 재밌게 (하지만 바르지 않게) 대답한 것이다. 이를 두고 공자께서 노여워하시는 모습이다.
삐딱함은 재미를 주지만, 감동은 진실함에서 나온다.
子曰 자왈
關雎 관저
樂而不淫 낙이불음
哀而不傷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관저는 시경에 실린 시를 말한다.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은 禮(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忠(충)으로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정공은 노나라의 군주로, 애공의 아버지다.
2008.3.12.
忠(충)은 자기 진심을 다한다는 뜻이다. 임금이나 윗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忠(충)할 수 있고, 아랫사람에게도 忠(충)할 수 있고, 일에도 忠(충)할 수 있다.
2017.12.5.
불의에 복종하는 것은 忠(충)이 아니다.
子曰 자왈
事君盡禮 사군진례
人以爲諂也 인이위첨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에게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쉽게 오해한다.
그래도 예를 갖출 대상에겐 예를 갖춰야 한다.
사람들을 의식해서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이다.
자공이 곡삭제에서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절차를 없애려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禮(예)를 아낀다.
告朔(곡삭)은 매달 초하루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