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독자께"로 시작하는 존댓말 서간체의 느낌이 좋았다. 상냥한 9통의 편지를 읽고 나면 책이 끝난다. 저자는 디지털 매체로 인해 깊이 읽기 경험을 상실하고 있는 인류에게 진심을 담아 호소한다. "독서가들이여, 다시 책으로 돌아 오세요."
한 사회의 좋은 독자들은 구성원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카나리아이자 인간성의 수호자입니다. ... 읽는 삶은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 우리가 지닌 최고의 지적 능력과 공감 능력을, 덕성을 위한 능력과 결합하는 것 ... 이런 능력들이 위험에 처하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집니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읽는 중이다. 『판단력 비판』은 미학, 그러니까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다. 칸트는 아름다움이라는 판단이 보편성을 갖는지 묻는다. "누군가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그 판단은 필연일까?", 다시 말해 "그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을 통해 칸트의 질문을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제목 '환원주의의 매혹과 두 문화의 만남'에서 언급되는 환원주의는 전체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방식이다. 과학에서 성공한 방식이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더 이상 사물의 구체적인 묘사로는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 미술가들은 이 환원주의를 받아들여 추상화 분야를 개척한다. 추상 미술가들은 전체 이미지를 해체한 뒤 극도로 단순화시킨 핵심만 전달하려 했다. 작가가 해체한 이미지를 접한 감상자는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동원해서 해석을 창조한다.
추상화의 감상자가 스스로 해석을 창조한다는 의견은 뇌과학적으로 볼 때 타당하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인식할 때 뇌에서는 2가지 처리가 일어난다. 하나는 시신경을 통해 지각된 대상과 배경을 인식하는 상향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를 동원해서 그 맥락을 이해하는 하향처리이다. 추상화의 해체된 이미지를 접한 감상자는 상향처리로는 아무런 인식도 얻을 수 없다. 하향처리를 통해 해석할 뿐이다. 그리고 감상자는 해석을 창조함으로써 작품을 완성하는 능동적 참여자가 된다.
이 책 덕분에 지금껏 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추상화를 즐겨볼 생각을 하게 됐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3.5 ★★★☆).
생각과 형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우리는 흡족한 마음의 평화를 향해 더 다가간다. 기쁨을 표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을 단순화하는 것, 우리가 하는 일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 앙리 마티스
수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는데, 소수(Prime Number)에 대한 연구는 정수론에 해당한다. 리만(1826~1866)은 여기에 해석학(미분,적분을 연구하는 분야)을 도입했다. 그 결과 해석적 정수론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리만은 직관적인 수학자였다. 그의 수학 강의는 인기가 없었는데, 그에게는 중간 단계 증명들이 자명해 보여서 설명 없이 넘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리만은 1859년 젊은 나이에 베를린 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누린다. 이때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한 연구 On the Number of Prime Numbers Less Than a Given Quantity' 논문을 제출한다.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어떤 물리학자와 수학자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들은 리만 가설의 공식이 서로의 공통 관심사였음을 발견한다.
1972년 봄, 정수론을 공부하던 박사 과정 학생과 한 물리학자가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젊은 학생은... 휴 몽고메리였고 물리학자는... 프리먼 다이슨이었다... 그날까지 다이슨과 나(몽고메리)는 단 한 차례의 대화와 한 장의 메모지를 주고받았을 뿐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주고받은 정보는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잘 만든 수학책이다. 자잘한 내용은 '그냥 나를 믿어달라'며 감추고 놓치면 안 되는 내용은 그림과 함께 설명하여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성취된 수학적 발견 사이에 줄거리를 부여하여 그 맥락을 이해하게 한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몇 번이고 더 읽을 생각이다. 승산의 책은 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