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브렌델은 1931년생으로 2008년에 은퇴를 선언한 피아니스트다. '작가'는 피아니스트 브렌델이 느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이 책은 '작가' 브렌델이 2012년에 썼다. 알파벳으로 챕터를 나누고 각각의 챕터를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에 관한 단상으로 채웠다.

 

피아노와 함께 나이 들어 익어간 사람의 정신세계를 조감할 수 있었다.

p162. S/ Stille, 영 silence
... 영어에는 listen = silent라는 흥미로운 글자놀이가 있습니다. 청취와 고요는 동일하다는 의미지요.

 

매일 아침 브렌델의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와 함께 조금씩 읽었다. 향긋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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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와대 일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1,826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윤재관 지음
한길사 펴냄

 

살면서 청와대에서 일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문재인 대통령 같은 인물과 일해보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이 책은 그런 귀한 경험을 담고 있다.

저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르며 일했던 경험, 그리고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치르기 위해 실무를 맡아 일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펼쳐놓는다. 그건 저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험이고 자산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이번에 축적한 자산을 토대로 다음번 평화 시기에는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다. 그리고 장차 더 위대해질 것이다.

 

제1부 인연/ 인연의 출발/ p28
... 그 말씀에 난 가슴이 뛰었다. 그때 이분과 꼭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제1부 인연/ 5년이 흐르는 동안/ p40
그날 봉하마을의 추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다시 봉하마을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 그것은 우리 참모들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무조건 유능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무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그런 주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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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좋았던 책

독후감 2024. 1. 1. 10:00

2023년에는 16권의 책을 읽었다. 사서 쟁여 놓은 지 10년 만에 칸트의 비평 시리즈 3권을 완독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뿌듯하다. 칸트 독서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탓에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특히 수학 분야의 책을 전혀 읽지 못했다. 새해에는 시집도 읽고 수학도 읽어야겠다. 분야별로 좋았던 책을 꼽아 본다.

 

철학 분야 : 판단력 비판

이제 읽어 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한다. 이 책 정말 좋다.

 

과학 분야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과학 분야에서 읽은 책이 이것 하나뿐인데, 추천할 만큼 좋았다.

 

사회/경제 분야 :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칸트 독서를 마치고 사회 분야의 책을 연달아 읽었다. 조국 부녀의 『디케의 눈물』, 『조국의 법고전 산책』, 『나아가는 중입니다』와 이 책을 놓고 고민했다. 모두 재밌고 추천할만했지만 이 책이 더 짧았고 그래서 더 강렬했다.

 

문학 분야 : 아버지의 해방일지

문학 분야에서도 읽은 책이 이 책 한 권뿐인데, 운이 좋게 이 책도 추천할 만큼 좋았다.

 

역사 분야 : 그때 맥주가 있었다

맥주 따라 유럽을 유람하는 느낌이었다. 편안한 독서였다.

 

심리/인지과학 분야 : 인공지능과 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좋았다. 표지의 "지극히 주관적인, 그래서 더욱 객관적인"이라는 문구가 관심을 끌었다.

 

2023년 베스트는 『판단력 비판』이었다. '사람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 받고 태어나서 해 볼 만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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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법고전 산책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난다

 

조국 지음
오마이북 펴냄

 

누구나 알듯 조국 작가의 현재 처지는 참담하다. 머리말에서 '견디겠다'고 전하는 그의 다짐이 가슴 아팠다.

...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읽고 씁니다. ...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믿으며 견디고 또 견딥니다.

 

책은 민주주의 법철학이 발전해 온 과정을 설명한다. 법학자 조국은 정말 자상한 교수님이어서, 어려운 법철학을 쉬운 언어로 설명해 준다.

1장. 사회계약/
루소... 누군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2장. 삼권분립과 '법을 만드는 방법'/
시민의 재판 참여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시민의 재판 참여는 '법관독재'를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며 재판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입니다.
3장. 입법권의 한계와 저항권/
로크... 사회계약론에 기초하여 '저항권', '혁명권'을 정당화한 것은 정말 위대한 이론적 업적입니다. 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거'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니까요.
4장. 죄형법정주의/
잠재적 범죄인이 범죄를 안 저지르게 하려면 잔혹한 형벌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면 확실히 잡혀서 벌을 받는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장. 소수자 보호와 사법통제/
"가난이나 굴욕 속에서 삶을 마치는 것밖에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민중이 있다. ... 이것이 시정되지 않는 한 처벌은 쓸데없는 짓이다."
6장. 자유/
우리나라는 오랜 권위주의 정권 또는 군사독재의 지배를 겪으면서 '자유'의 의미가 왜곡되어 있습니다. '자유주의'를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억압하는 '반공' 자유주의로 이해하거나 기업의 무한정 자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7장. 권리/
왕은 시삼네스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가죽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재판 임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로마든 페르시아든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자가 저지른 불법은 다른 범죄보다 훨씬 엄격하게 처벌한 것입니다.
8장. 악법도 법인가/
민청학련 사건... 김병곤(당시 서울대 4학년)은 사형선고가 내려지자 당당히 외쳤습니다. "영광입니다. 유신 치하 민중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음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9장. 시민불복종/
간디...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다." "국가가 무법적이거나 부패해졌을 때 시민불복종은 신성한 의무가 된다."
10장. 평화/
칸트는 전쟁의 시대를 살면서 영구 평화를 꿈꾸었습니다.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저자의 깊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민주주의 전문가이자 법치 전문가다. 언젠가 조국 작가가 정치 일선에 나서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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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한다

소비사회가 잠식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 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나현영 옮김
현암사 펴냄

 

저자(지그문트 바우만)는 뚜렷한 국적도 없이 떠도는 떠돌이 철학자다. 그에게는 뿌리내릴 단단한 지반이 없다. 그래서 '유동성(Liquid)'이란 단어가 그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됐다. 저자가 보기에 급변하는 사회를 사는 현대인 모두가 단단한 지반을 잃은 유동성의 인간들이다. 60~70년대에는 후진국에서, 80~90년대에는 개도국에서, 2000년대 이후에는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저자의 생각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 영원하길 바라며 의지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해결한 문제보다 해결할 문제가 더 많다.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갈등이 문제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저출산이 문제고,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이 문제고, 노인들의 빈곤이 문제다. 이 책은 이 문제들이 유럽 선진국들에게도 당면 과제임을 알려준다.

 

인터뷰어(리카르도 마체오)와 인터뷰이(지그문트 바우만)는 서면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들은 교육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얽히고설킨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생각할 때, 교육 제도를 개선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지적인 대화를 펼쳐가는 모습이 경이로왔다. 저자들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발췌한다.

 

유럽에서도 낮은 출산율이 사회 문제다.

(유럽 전역에서 계속 감소하고 있는) 현 출생률로 보아... "이민자는 위험이 아닌 자산"
(1. 혼성 애호와 혼성 혐오 사이 p12)

 

유동성 속의 인간에게는 새로운 것을 빨리 배우는 능력과 낡은 것을 빨리 잊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방에 정보가 너무 많다. 정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99.99퍼센트의 원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다."
( 7. 퇴폐는 박탈의 가장 교묘한 전략 p65)

 

유럽에서도 청년 세대의 빈곤이 사회 문제다.

전후 유럽사의 흐름에서... 먼저 '베이비 붐' 세대가 있었고, 각각 X세대와 Y세대로 불리는 세대가 뒤를 이었습니다. ... 가장 최근에는 Z세대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예고가 있었죠. ... 이 세대는 전후 최초로 사회적 지위가 하강 이동될 것이라는 전망을 맞닥뜨린 세대입니다.
( 8.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이 파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분 p79)

 

유럽에서도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족이 사회 문제다.

대학 졸업장을 상자 속에 처박아놓고 배달원, 가게 점원, 택시 운전사, 웨이터 등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에 눌러앉는 졸업생들이 점점 더 늘고 있어요.
( 11. 실업자도 복권은 살 수 있지 않나요? p115)

 

소위 말하는 보통 또는 정상의 의미가 '통계적 다수일 뿐'이라는 지적이 통쾌했다.

통계적 다수에 속한다는 사실 외에 '정상'의 뜻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또 통계적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 말고 '비정상'의 뜻은요?
( 12. 정치적 문제로서 장애, 비정상, 소수의 문제 p122)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시스템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없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비자입니다. 다른 무엇이기보다 먼저 소비자며, 소비자로 존재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예요. ... 슈퍼마켓은 우리의 사원인 셈이에요. ... 쇼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쾌락의 부재뿐 아니라 인간 존엄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 14. 결함 있는 소비자와 끝없는 지뢰밭 p143)
박탈된 사람들이 빈민가나 다름없는 도시 특정 지역에 밀집해 사는 이유는 사회 정책 때문이 아니라 주택 가격 때문입니다.
( 14. 결함 있는 소비자와 끝없는 지뢰밭 p148)
우리가 경력을 쌓느라 배우자와 자녀를 등한시하는 사이 마케팅 전문가들은 보상의 형태로 항상 무언가를 구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죄책감을 자본화합니다.
( 20. 성숙기에 이른 글로컬라이제이션 p213)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희망하며 독서했다.

번역으로 인한 피로가 없었다.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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