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나'라는 착각

The Self Delusion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흐름출판 펴냄

 

인간 본성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뇌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와 실험 자료들을 말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철학서나 종교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주장하는 책이 아니라 사실을 나열하는 책이다. 책이 제시하는 사실에 기대어 풍성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독서하는 과정에서 뜬금없이 논어 속 문장 하나를 이해하게 됐다. '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이란 문장이었다.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예의가 아니면 보지 말라, 듣지 말라'는 구절이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닥쳐오는 사건 아닌가? 보여지는 것을 보고 들려지는 것을 듣는 것인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말인가?

 

p262. 우리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미디어를 보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 과거의 당신이 이야기로 만들어졌듯이, 이야기는 미래의 당신을 바꿀 수 있다.
p279. 쓰레기를 읽으면 쓰레기가 된다.

 

그렇다. 가려 보고 가려 들으면 되는 일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공자님을 인용한다. 역시나 저자는 동양 고전을 읽은 서양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 『월든』의 '소로우'도 논어를 읽은 서양 사람이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갖는 서양 사람은 흥미롭다. 흥미로운 사람에게서 흥미로운 글이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에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남기기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른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긴 시간 동안 차분히 읽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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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x 인간지능의 시대

"AI 시대를 항해하는 사피엔스를 위한 안내서"

 

김상균 지음
베가북스 펴냄

 

ChatGPT를 비롯한 AI 기술의 왕성한 발전을 볼 때마다 '이제 인간은 쓸모 없어지는 것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이 두려움의 태반은 'AI'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급속한 변화'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것은 두렵기 마련이다. 'AI x 인간지능의 시대'를 읽게 된 이유다. AI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은 시종일관 AI를 새로운 도구라고 역설한다. AI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용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도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과 미래에 할 수 있게 될 일을 나열한다. 다소 지루했던 사실과 상상의 나열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AI는 도구일 뿐'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였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책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AI로 인해 세상이 변화해도, 정말 아무리 변화해도 인간 자체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저자의 의견이 기억에 남는다. 삶에서 의미를 찾고, 또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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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함수와 미적분을 마스터하다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

 

Transnational College of LEX 지음
이경민 옮김
Gbrain 펴냄

 

2013.10.9.

세상의 모든 것은 파동이다.
내 심장의 규칙적인 움직임도, 빛도, 소리도 파동이다. 푸리에 해석은 그런 파동을 해석하는 수학적 기법이다. 이 책은 푸리에 급수와 푸리에 계수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포함된 수학 스터디 그룹이 만든 공동 기획물이다. 푸리에 해석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고 함께 모니터링 하면서 만든 저작물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여러 나라에서 공식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럴만 하게 내용이 좋다.

 

나는 수학을 너무 압축적으로 배웠다.
수식으로만 증명했고 정제된 공식만 외웠다. 이책은 삼각함수의 적분을 설명하면서 가위와 풀로 삼각함수의 그래프를 오려 붙여가며 한주기 동안의 삼각함수 적분이 0 임을 설명한다. 단순한 시도지만 수식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직관을 얻었다. 논어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이라는 구절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學而)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不思) 나는 수학에서 망했던 것이다(則罔).

 

이 책의 하일라이트는
삼각함수로 구성된 푸리에 해석에 오일러 공식을 적용해서 간결한 복소수 표현으로 바꾸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복소평면과 삼각함수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오일러 공식과, 모든 함수를 일관된 형태로 표현하는 매클로린 전개를 이용해서 푸리에 급수를 아름답도록 간결한 표현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멋드러지게 설명한다.

 

저술과 번역 모두 좋았다.

 

 

2024.6.3.

이제 e의 복소지수 수식을 보면 그 이면의 코사인 함수와 사인 함수가 보인다. 오일러 공식과 친해진 것이다. 기쁘다.

오일러 공식

 

독서를 통해 푸리에 급수가 무엇인지, 푸리에 변환이 무엇인지 흡족하게 배웠다. 그 과정에서 미분과 적분도 충분히 연습했다. 대학 전공 공부 전에 이 책을 봤다면 공업수학 빵구는 면했을 것이다. 아쉽다.

 

훌륭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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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마칠 때 쯤 ChatGPT가 그려준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림을 보고 생각해야 더 생생하게 각인되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ChatGPT가 제시한 그림이 독서를 정리하는데 도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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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Understatement

 

마티아스 뇔케 지음
이미옥 옮김
퍼스트펭귄 펴냄

 

태도에 관한 책이다. 자신을 부풀리지 말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만 표현하라고 한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한다. 책의 원제 Understatement는 '절제된 태도'를 뜻하는 것 같다. 다양한 사례를 동원해서 '절제된 태도'의 장점을 설명한다. 책의 내용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논증적이라기 보다는 선언적이었다. 분량도 짧아서 "왜?"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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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이론의 개념과 회로 해석을 명확히 배울 수 있는 정통 입문서

회로이론

 

Fawwaz T. Ulaby, Michel M. Maharbiz 지음
박병국, 조성재, 강인만, 김중빈 옮김
한빛아카데미 펴냄

 

문득 라플라스 변환과 푸리에 변환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을 고르는데, 어라? 이게 내가 배운 과목에 있었어? 게다가 그 과목이 전공 필수였어? 여태껏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렇게 몇십 년이나 지나서, '문득 그냥 알고 싶어져서' 전공필수였던 회로이론을 다시 공부했다.

 

페이저(Phasor) 변환, 라플라스 변환, 푸리에 변환이 재밌었다. 이 도구들을 사용하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었다. 이 도구들의 핵심 기초는 오일러 공식이었다. 삼각함수와 e의 복소 지수를 결합한 오일러 공식 덕분에 주기 함수를 복소 평면 위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새삼 삼각함수, 오일러 수 e, 복소 지수 체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페이저(Phasor) 변환, 라플라스 변환, 푸리에 변환으로 문제를 풀면서 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생각했다. 이 도구들을 쓰면 항상 답을 구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쾌감을 느꼈다. 그게 과학과 공학의 차이인 것 같다. 답이 없는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과학이고,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것이 공학인것 같다.

 

좋은 전공 교재였지만 가끔 오타가 있었다. 확고한 지식이 없는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의심하게 되어 피곤했다. 판을 거듭하면서 정정되면 좋겠다 (번역 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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