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懿子 問孝 맹의자 문효
子曰 無違 자왈 무위

 

맹의자가 孝(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셨다.

 

樊遲御 子告之曰 번지어 자고지왈
孟孫 問孝於我 맹손 문효어아
我對曰 無違 아대왈 무위
樊遲曰 何謂也 번지어 하위야

 

(제자) 번지가 수레로 (공자님을) 모실때, 공자께서 일러 말씀하셨다.
"맹손(맹의자)께서 내게 孝(효)를 묻길래,
내가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 대답했다."
번지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子曰 자왈
生 생
事之以禮 사지이례
死 사
葬之以禮 장지이례
祭之以禮 제지이례

 

공자께서 설명하셨다.
살아계시면
禮(예)로써 모시고,
돌아가시면
禮(예)로써 장례를 치르고,
禮(예)로써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맹의자는 노나라의 大夫(대부)다.

번지는 공자님의 제자로 공자님보다 36세 어렸다.

 

2018.5.9.
孝(효)에 있어 거스르지 않을 대상이 부모님이 아니라 禮(예)임을 이제야 알았다.

 

2022.5.22.
禮(예)는 균형과 절제다. 공자님의 가르침은 맹목이 아니라 균형과 절제다. 바로 禮(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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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4장

논어 2008. 1. 31. 13:20

子曰 자왈
吾十有五而志于學 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 삼십이립
四十而不惑 사십이불혹
五十而知天命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육십이이순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스스로 일어섰으며,
사십에 미혹됨이 없었다.
오십에 天命(천명)을 알았고,
육십에 (모든 말을 수용할 수 있을만큼) 귀가 순해졌으며,
칠십에는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법도를 그르치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계신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시다.
당시 다른 암기과목 선생님들께서는 학력고사(지금으로 따지면 수능) 전까지 진도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가를 중요하게 취급하셨다. 근데, 이 선생님께서는 학기 초에 말씀하시기를 시험 전까지 진도를 딱 한 번만 나가겠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 후 1년에 걸쳐 조곤조곤 차분하게 역사의 맥락을 짚어주셨다. 이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저런 일이 생겨났고, 그 의미는 어떻고... 학력고사에서 국사 점수가 꽤 잘 나왔다. 그 후로 맘 깊이 존경하고 있다 (점수 때문이 아니다).

인생이란 시험이 그렇다. 진도를 몇 번 나가느냐, 얼마나 빨리 나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딱 한 번 진실하게 채워나갈 일이다. 한때 지우학, 이립, 불혹 등의 진도를 공자님보다 빨리 해치우려고 조바심쳤던 기억이 있다. 인생은 그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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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3장

논어 2008. 1. 31. 07:01

子曰 자왈
道之以政 도지이정
齊之以刑 제지이형
民免而無恥 민면이무치
道之以德 도지이덕
齊之以禮 제지이례
有恥且格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德(덕)으로 이끌고
禮(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아 바로 잡을 것이다.

 

2018.5.8.
德(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知(지)와 德(덕)을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知(지)는 모르는 것을 이해하는 머리의 능력을 뜻하고 德(덕)은 모르는 것을 포용하는 마음의 능력을 뜻하는 것 같다.

 

2019.4.10.
德(덕)은 知(지)와 대비되는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무리스럽지만 지금 생각하는 바를 메모하자면, 德(덕)은 삶을 통찰해서 얻은 목표와 그것을 추구하는 태도인 것 같다.

 

2022.5.5.
善(선)은 남들보다 잘하는 무언가를 뜻하고, 德(덕)은 그 善(선)을 행동에 옮길 결심까지 갖춘 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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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2장

논어 2008. 1. 30. 00:34

子曰 자왈
詩三百 시삼백
一言以蔽之曰 일언이폐지왈
思無邪 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전해오는) 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생각함에 사사로움이 없다'라 하겠다.

 

2014.9.2.
"사악함이 없다"를 "사사로움이 없다"로 수정했다. 삶이란 사사로움을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10.23.
시경의 시 중에는 지극히 사적인 연애시들이 많다. 그럼에도 공자께서는 "사사로움이 없다"고 평하셨다. 공자님의 말씀을 근거로 생각하자면 "사적인 것"과 "사사롭지 않은 것"은 양립 가능한 개념이다. "사사로운 것"을 "나만 좋은 것"으로 풀면, 사적인 일을 대할 때도 사사롭지 않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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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1장

논어 2008. 1. 29. 00:34

子曰 자왈

爲政以德 위정이덕

譬如北辰 비여북진

居其所 거기소

而衆星共之 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德(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과 같다.

거기 있으면

뭇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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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6장

논어 2008. 1. 28. 01:15

子曰 자왈
不患人之不己知 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 환부지인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다른 사람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염려하라.

 

2008.1.28.
자기를 몰라주는, 그래서 온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세상에 답답함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논어에 자주 나오는 구절이면서 삶에 자주 위안을 주는 구절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할 일을 하면 된다.

때로는 엄중한 꾸짖음으로 들릴 때도 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억울해하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내가 정말 온당한 대우를 바랄만한 사람이 못될 수도 있다.
감정을 소비하지 말고 할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게 문장사이의 여백이 큰 것도 논어의 매력이다. 이렇게 논어 학이편이 끝난다.

 

2019.1.27.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만큼, 내가 남을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지만, 내가 남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의 일이다. 남에게 관심을 쏟고 남을 알아주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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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5장

논어 2008. 1. 27. 01:50

子貢曰 자공왈
貧而無諂 빈이무첨
富而無驕 부이무교
何如 하여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子曰 자왈
可也 가야
未若貧而樂 미약빈이락
富而好禮者也 부이호례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삶을) 즐기고,
부유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子貢曰 자공왈
詩云 시운
如切如磋 如琢如磨 여절여차 여탁여마
其斯之謂與 기사지위여 

 

자공이 말했다.
詩(시)에 이르기를
베는듯, 가는듯, 쪼는듯, 다듬는듯 한다 (끊임 없이 연마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이르는 거군요? 

 

子曰 자왈
賜也 사야
始可與言詩已矣 시가여언시이의
告諸往而知來者 고저왕이지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이제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이야기를 일러주니 다가올 이야기까지 아는구나.

 

2022.11.08.
공자님께서 '未若貧而樂'이라고 樂(낙)에 대해 말씀하신다. 옹야편의 '回也不改其樂'이라고 하신 말씀과 이인편의 '不仁者 不可以長處樂'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공자님께서는 樂(낙)을 잃지 않는 삶이 중요함을 자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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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4장

논어 2008. 1. 26. 00:43

子曰 자왈

君子 군자

食無求飽 식무구포

居無求安 거무구안

敏於事而愼於言 민어사이신어언

就有道而正焉 취유도이정언

可謂好學也已 가위호학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먹을 때 포만함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할 때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만약) 일에 민첩하게 임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며,

道(도)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자신을 바로 잡는다면

가히 배우기를 좋아한다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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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3장

논어 2008. 1. 25. 06:22

有子曰 유자왈
信近於義 言可復也 신근어의 언가복야
恭近於禮 遠恥辱也 공근어례 원치욕야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인불실기친 역가종야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信(신)을 義(의)에 가깝게 행한다면, 뱉은 말을 지켜도 좋다.
恭(공)을 禮(례)에 가깝게 행한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가까운 이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를 주인으로) 섬겨도 좋다.

 

2008.1.25.
義(의)와 禮(례)는 크고 어려운 개념이다. 반면 신뢰와 공손함은 상대적으로 작고 구체적인 개념이다. 작은 일부터 다져나가는 것이 배움의 길이다.

 

2017.3.5.
信(신)과 恭(공)은 모두 미덕이다. 하지만 더 큰 미덕인 義(의)와 禮(례)에 합치해야 한다.
義(의)와 禮(례)에 합치하지 않는 信(신)과 恭(공)은 소인배의 의리이고 소인배의 굽신거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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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2장

논어 2008. 1. 24. 00:45

有子曰 유자왈
禮之用 예지용
和爲貴 화위귀

 

유자께서 말씀하셨다.
예의 쓰임에 있어
조화가 중요하다.

 

先王之道 선왕지도
斯爲美 사위미
小大由之 소대유지

 

선왕의 道(도)는
바로 이 점이 아름다운 것이다.
작고 큰 것 모두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有所不行 유소불행
知和而和 지화이화
不以禮節之 불이례절지
亦不可行也 역불가행야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조화가 좋은 것을 알아 조화만 이루려하고
禮(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그또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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