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편 팔일'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08.03.19 논어 03편(팔일) 26장
  2. 2008.03.18 논어 03편(팔일) 25장
  3. 2008.03.17 논어 03편(팔일) 24장
  4. 2008.03.16 논어 03편(팔일) 23장
  5. 2008.03.15 논어 03편(팔일) 22장

子曰 자왈

居上不寬 거상불관

爲禮不敬 위례불경

臨喪不哀 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 오하이관지재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관용스럽지 못하고

예를 행함에 공경함이 없고

상을 겪음에 슬퍼함이 없다면

내 어찌 그런 모습을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관용, 공경, 슬픔 같은 본질이
정치, 예의, 상례 같은 형식의 근본이다.
이로써 팔일편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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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謂韶 자위소

盡美矣 진미의

又盡善也 우진선야

謂武 위무

盡美矣 진미의

未盡善也 미진선야

 

공자께서 韶(소)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또 지극히 선하다.

武(무)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극히 아름답다.

그러나 지극히 선하지는 못하다.

 

韶(소)는 순임금의 음악이다.
武(무)는 주나라의 시조 무왕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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儀封人請見曰 의봉인청현왈

君子之至於斯也 군자지어사야

吾未嘗不得見也 오미당부득현야

從者見之 종자현지

 

의봉인(儀지역의 국경 관리인)이 공자를 뵙고자 청하며 말했다.

군자가 이곳에 이르렀을 때,

내가 만나뵙지 못한 분은 없었오.

종자가 그를 공자께 인도했다.

  

出曰 출왈

二三子何患於喪乎 이삼자하환어상호

天下之無道也久矣 천하지무도야구의

天將以夫子爲木鐸 천장이부자위목탁

 

그가 나와서 말했다.

여러분 어찌 그리 근심하십니까?

천하가 무도한지 오래됐으나,

이제 하늘이 공자를 목탁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자가 정치 이상을 펴기 위해 천하를 떠돌다
곤궁에 처한 시절의 이야기라고 한다.

공자라는 커다란 인물을 기록한 논어에는
이름 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은자와 현자들도 많이 등장한다.
볼품 없는 장삼이사들에게도 인생, 배움, 깨우침은 귀한 것이다.
의봉인도 인생, 배움, 깨우침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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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語魯大師樂曰 자어노태사악왈

樂其可知也 악기가지야

始作 시작

翕如也 흡여야

從之 종지

純如也 순여야

曒如也 교여야

繹如也 역여야

以成 이성

 

공자께서 노나라의 태사악(음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말씀하셨다.

음악에 대해 알 것 같습니다.

시작할 때

흩어진 여러 소리들이 합해져서,

끝나갈수록

조화되고,

명료해지고,

찬란해집니다.

이렇게 한곡이 완성됩니다.

 

공자는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
악기도 좋아했고,
노래도 좋아했다.
멋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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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자왈

管仲之器小哉 관중지기소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이 작았다.

 

或曰 혹왈

管仲儉乎 관중검호

管氏有三歸 관씨유삼귀

官事不攝 관사불섭

焉得儉 언득검

 

누군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관중은 부인이 셋이나 있었고,

집안 일을 보는 사람들도 일을 겸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찌 검소했다 하겠는가?

 

然則管仲知禮乎 연즉관중지례호

邦君樹塞門 방군수색문

管氏亦樹塞門 관씨역수색문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管氏亦有反坫 관씨역유반점

管氏而知禮 관씨이지례

孰不知禮 숙부지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임금이 수색문(집 안에 두는 낮은 담장,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수색문을 썼고,

임금이 다른 임금을 맞아 반점(술잔 받침, 역시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반점을 썼다.

관중이 예를 알았다 하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명재상이다.
공자보다 100년전 사람이다.

계씨가 집안에서 팔일무를 쓰는 예의 없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이번 장의 주제는 禮(예)를 바로 잡아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관중은 당시 전설적인 명재상이었다.
공자가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관중의 행적을 빌어 스스로의 세도를 정당화 하는
당시 노나라 권문들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ing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