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를 위한 책, 그러나 아무도 이해하지 않는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펴냄


원서에 대한 이해 없이 원어의 단어를 번역어의 단어로 치환하는 것은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역자는 자기가 이해한 내용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글로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훌륭했다.


역자는 원서를 <시>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제목도 '짜라투스트라...'나 '차라투스트라...'가 아니라 '짜라두짜...'이다. 시적 운율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원서의 과장된 어투와 몽환적 전개가 납득된다. 번역 상의 장점이 하나 더 있다. 원래 이 책은 거의 모든 내용이 대화다. 역자는 대화의 맥락에 따라, 그러니까 말을 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에 따라 어투를 달리한다. 시종일관 '...하노라' 식의 낯선 말투로 일관하는 다른 번역서들과 달리 이 책에 실린 대화는 알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모호하고 흐릿하지 않은 또렷한 니체를 만날 수 있다. 또렷하게 마주한 니체가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는 그 다음 이야기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짜라두짜)를 통해 신이 죽었다고 선언하지만, 그러니 마구 살아도 좋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초월한 더 나은 존재(초인)가 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며 살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삶이 무한히 반복되더라도 그것을 긍정하라고 한다. 어떤 철학자보다 도덕적으로 강경한 주장이다.

아직까지 니체가 낯설다. 몇 번 더 읽을 참이다.


참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4 ★★★★).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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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정책 vs 금융 정책

대침체의 교훈


리처드 C. 쿠 지음

김석중 옮김

더난출판 펴냄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1990년대 일본의 대침체를 비교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의 경제학자다. 저자가 내세운 <대차대조표 침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국가가 실행할 수 있는 경제 정책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있다.

재정정책은 정부가 예산(돈)을 투입해서 투자를 주도하는 정책을 말하며, 통화정책은 (정부가 아닌) 중앙은행이 지급준비율을 조정해서 통화량을 조정하는 정책을 말한다.


저자는 경제 상황을 양의 사이클과 음의 사이클로 구분하여 분석하자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경제 교과서에는 음의 사이클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의 대공황과 일본의 대침체(잃어버린 20년) 때 경제학자들이 적절한 정책 대안을 내놓을 수 없었다.


양의 사이클은 모든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상적인 시기다. 따라서 기업들이 은행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투자를 늘리려고 한다. 이 시기에는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

반면 음의 사이클은 거품 붕괴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비정상적인 시기다. 음의 사이클에서는 모든 기업들이 부실해진 대차대조표를 복구하기 위해 부채 최소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은행이자가 아무리 낮아도(심지어 제로 금리가 되어도) 기업들이 대출을 기피한다. 이런 상황(대차대조표 침체 상황)에서는 통화정책이 먹힐 수 없다.


음의 사이클에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

즉, 정부 주도의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가 경제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15년(1993~2008년, 이 책은 2009년 3월 출판됨)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본은 정부의 재정정책 덕분에 기업들이 부채를 청산하고 재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


대차대조표 침체는 몇십년에 한번 오는 드문 현상이다.

이 시기에는 조심스러운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특히 피해야 할 정책이 있다면 경솔한 구조조정(부실 자산 처분)이다. 부실 자산은 경제 상황이 충분히 회복되었을 때 처분해야 한다. 이를 지혜롭게 조절하지 못할 경우 기업과 국민은 크나큰 고통을 겪게 된다. 2016년 총선 패배 이후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이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훌륭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4 ★★★★).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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