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수 없는 배


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나서도 많이 울었다. 커피 잔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많이 났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군들 울지 않겠는가. 그러나 운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군들 울지 않겠는가.


이 책이 말하는 몇가지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6천톤 넘는 세월호는 결코 작은 배가 아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배의 선장은 비정규직이었고 계약기간은 1년 미만이었다. 그는 언제든지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버리고 승객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선장이었다.

  • 세월호는 제주도로 가는 가장 싼 운송수단이 아니었다. 대운하, 아라뱃길 사업을 위해 교육당국은 고등학생들의 '카페리' 수학여행을 권유했다.

  •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수상택시 주사업자가 청해진해운이었다

  • 2009년 이전 한국은 일본처럼 선박시장에서 1시장(새 배를 구입해 쓰는 시장)이었다. 지금보다 못 살던 시절에도 일본의 고물 배를 사다가 여객선으로 운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길을 열어준 후, 한국 연안여객은 일본의 2시장(중고 배를 구입해 쓰는 시장)이 되었다.

  • 2008년 이명박 인수위는 청와대의 국가안보실(NSC)을 폐지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총리실 산하로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한다. 관료들 입장에서 볼 때, 이건 앞으로 큰 사건이 벌어지면 대통령은 보고만 받고 책임지지 않겠다는 메시지이다.

  • 세월호 참사의 정부쪽 책임자를 굳이 따지자면 감사원이다. 그러나 각종 감사직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 자리는 정권의 공신들을 챙겨주기 위한 자리임을 알 수 있다.

  • 세월호 대책으로 5급 공무원 공채를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이 나왔다. 이건 공채 비율은 절반으로 줄이고 대신 정부 고위직과 특권층 자녀들의 공무원 특채를 용이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참사로 정신 없는 사이에 정권이 하고 싶은 일을 끼워 넣은 것이다.


기록에 대한 의무감으로 급하게 쓴 책이다. 구성이 치밀하지는 않았다. 나도 기억에 대한 의무감으로 읽었다. 참사 이후 200일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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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지는 사람들 (Alone Together)

테크놀로지가 인간관계를 조정한다


셰리 터클 지음

이은주 옮김

청림출판 펴냄


영어 제목, "Alone Together"가 주제를 잘 요약한다. "함께 외로워진다".

서로 스마트폰만 내려다 보고 있는 요즘의 우리는 정말이지 함께 있어도 외롭다.


스마트폰
스마트폰을 쓰면서 우리는 음성 통화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선호한다.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않고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처럼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지 않는다.


반려 로봇

노인이나 어린이를 돌볼(take care) 때는 대상에 대한 공감이 기본이다. 하지만 로봇이 노인이나 어린이를 돌보는 경우, 로봇은 대화를 듣는 척 연기할 뿐 대화의 내용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don't care about) . 로봇의 돌봄에는 "공감"이 없다. 로봇이 일상화되면 우리는 더이상 "돌봄"이라는 행위에서 "공감"을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스마트폰과 로봇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인터뷰를 소개한다. 저자의 의중("누구를 위한 기술 발전이란 말인가?")은 아주 짧게 스쳐지나간다. 객관적인 데이터 전달이 책의 목적이었던 듯 싶다. 덕분에 비슷한 얘기가 반복되어 지루하다.

번역은 좋았다 (번역 별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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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배신

화이트칼라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이 책의 원제는 "Bait and Switch (유인상술)"이다. 원제가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르포 기자인 저자가 화이트칼라 실직자 입장이 되어 취업 컨설팅 전문가,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 취업 알선 모임, 취업 박람회 등을 통해 구직활동을 펼치면서 느낀점을 기록한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중산층의 표본이던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과 문제의 원인을 이야기한다.

미국 기업의 CEO는 구조조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제거했는가로 얼마나 훌륭한 CEO인지를 평가 받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하에 기업에 대한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며 우대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는 동시에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사회보장을 축소하고 있다. 모순이다.

근면하게 규율대로 일했음에도 원치 않게 실직 당한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은 불행의 원인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은 미국 사회의 시스템에 있다. 이제 미국의 화이트칼라들은 (특히 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의료보험 확대 같은 이슈를 용기 있게 주장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낱말만 제거하면 정확하게 우리 사회의 문제다. 미국과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닮아 있다.


"노동의 배신", "긍정의 배신" 같은 일련의 배신 시리즈의 강렬한 제목과 좋은 서평 때문에 무척 기대했던 책인데 기대보다 미흡했다. 작가의 위트 있는 표현이 재밌었지만 작가 주변의 이야기만 좁게 서술됐다. 번역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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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대가

독후감 2013. 12. 2. 17:44

불평등의 대가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이 심화된 미국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미국은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나라였다. 누구나 성공을 이룰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2013년)의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감세하고, 금융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취약층에 대한 재정지출을 줄였다. 그렇게 부유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펼치는 동안 1980년대 재정흑자를 고민하던 강건한 나라는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는 병약한 나라가 되었다.


원가절감과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지금의 미국 젊은이들은 변변한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대학교를 졸업하지만 학자금 대출로 인해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빚쟁이가 된다. 운 좋게 일자리를 얻더라도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에게 얹혀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젊은이들과 함께 사는 미국의 50대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안정적이 않을 뿐아니라 국가로부터도 자녀로부터도 노후를 보장 받지 못하리라는 우울한 사실 때문에 절망한다.


저자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면 1%의 부유층을 지원할 게 아니라 99%의 취약층을 지원해서 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처방한다. 사회의 불평등을 타개하고 공정성과 기회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자신을 내던졌다. 그 결과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를 우리도 똑같이 겪고 있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정성을 회복하고 기회의 평등을 회복하라는 미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우리 사회에도 적절한 처방이 될 것 같다.


본문만 46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좋은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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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펴냄


우리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장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행복한가? 거래의 자유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하려면 근거가 정당해야 한다. 저자는 돈을 매개로 한 거래가 정당하려면 2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거래가 진실로 공정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생존 때문에 자신의 장기를 내다 팔아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 자유 의지에 의한 거래가 아니다. 공정을 가장했을 뿐 강요에 의한 불공정한 거래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래로 인해 거래 대상의 가치가 부패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이다.

뇌물이 불미스러운 이유는 뇌물이 유리한 판결이나 정치적 영향력 등 거래돼서는 안되는 대상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섹스, 출산, 육아, 교육, 판결 등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순간 본질적 가치가 부패한다.


오늘 내가 사는 사회는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사회다.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좋은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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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독후감 2013. 8. 10. 08:53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근대는 규제 사회였다. 현대는 성과 사회다.

근대의 정신 질환은 부정적 규제(하지말라는 규제)에 의해 억압된 무의식에서 기인했다. 반면 현대의 정신 질환은 긍정의 과잉(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멋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개인의 우울에서 기인한다.

현대 사회는 단절된 관계 속에서 저마다의 피로에 매몰된 사회라는 저자의 진단에 공감한다.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모자랐다. 하지만 날카로운 문제 제기만으로도 가치 있었다.

저자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인 저자를 두었음에도 독어를 번역한 번역서다. 번역은 평범한 수준이었으나 이해를 방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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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독후감 2013. 8. 10. 08:53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펴냄


<진지함>, <고민>, <청춘>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는 취지의 수필 모음이다. 짧은 글들이 여럿 모여 있다. 글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은 적다. 고민의 가치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으나 고민을 해소하는 답을 얻기에는 분량이 너무 작았다. 책의 제목을 보고 기대한 바가 너무 컸던 것 같다.

번역은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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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독후감 2013. 4. 13. 15:27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향희승 옮김

중앙북스 펴냄


스웨덴 출신의 여성 활동가가 인도 북부에 있는 '라다크'라는 지역에서 보낸 경험을 쓴 책이다. 라다크는 국가적으로 인도에 속하지만 인근 티벳과 교류가 잦았고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종교적으로 티벳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수다. 중국과의 영토분쟁을 염두에 둔 인도가 관광지로 '개발'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라다크는 누구도 탐내지 않는 척박한 고원지대에서 자급자족하던 사회였다.


지은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라다크에 있어왔던 생활방식이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라다크 사회의 옛모습과 발전을 추구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통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다. 인생... 참... 별것 없는데...


글로벌 경제가 아니라 로컬 경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규모 기술이 아니라 적정 규모의 기술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굿 워크" 등의 경제서와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깔끔하게 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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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이전 독서 '증오의 세기'는 흥미로웠지만 힘든 독서였다. 참혹한 전쟁과 인간의 증오심에 절망한 때문이었다. 이번 독서도 편한 독서는 아닐 것 같았다. 


전 지구인이 먹고도 남을만큼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지금, 5초마다 한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 진보적인 교사들조차도 교육현장에서 이런 참혹한 기아에 대해 토론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유엔 소속 활동가다. 이 책은 지은이가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기아의 현실과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지은이가 설명하는 기아의 이유는 탐욕이다. 권력의 탐욕, 자본의 탐욕이 기아의 원인이다.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식민지 시절 오직 한가지 작물(땅콩)만 재배하여 종주국 프랑스에 수출하고 필요한 식량을 수입하는 왜곡된 경작 구조를 갖게 됐다. 지금이라도 경작 구조를 바꾸면 식량 자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식량 수입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정부 관료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경작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네갈 농민들은 풍요로운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굶어 죽는다. 권력의 탐욕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1970년, 칠레에서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유의 무상배급을 공약으로 내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칠레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아옌데가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값을 주고 사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 정부에 대한 모든 협력을 거부했다. 결국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본의 탐욕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희망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의 희망에서 어슴프레한 위안을 얻는다.

얇은 책이다. 깔끔한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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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독후감 2012. 9. 8. 09:13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


강렬한 제목. 강렬한 내용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얇은 두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92세의 노인이다. 이 노인이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분노하라고 충고한다. 분노하되 폭력을 쓰지말라 한다. 부조리에 격분하여 테러를 자행하는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나, 폭력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포기 없는 참여다. 모든 선거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며, 선거에서만 그치지 말고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참여하라 한다. 최악의 선택은 '내가 세상을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가 존경하는 롤 모델은 '아웅산 수치' 여사와 '간디'다. 그들은 폭력을 쓰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매끄러운 번역은 아니었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존경스러운 저자의 존경스러운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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