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Let my people go surfing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

 

한글 제목과 원서 제목의 느낌이 조금 달랐다. 한글 제목은 "파도가 치면 서핑을 가겠다"라는 자기 실현적인 느낌인데, 원서 제목은 "내 사람들이 서핑 갈 수 있게 배려하겠다"라는 이타적인 느낌이다. 책을 읽은 뒤 미루어 생각해보면 양쪽 모두 저자의 본모습이다. 저자는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대단히 현실적인 모험가다. 위험한 모험의 순간에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면 동료를 버리는 선택도 담담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질거나 못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죽음과 직면하는 모험을 거듭하면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1960년대에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다. 당시 그는 한국인 등반가들과 인수봉에 쉬나드A 루트와 쉬나드B 루트라는 암벽등반 길을 개척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사업을 일으키면서 한국에서 함께 했던 암벽등반 동료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친구들을 직원으로 초대하는 것은 저자가 일으킨 회사 파타고니아의 전통이다.

파타고니아는 한번 쓰고 버리는 제품이 아니라 오래도록 수선해가며 평생을 쓰고 물려주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철학이라고 한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성공한 사업가의 성공 스토리다. 세상의 모든 성공 스토리가 그렇듯 가려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이 아니라 환경을 목적으로 사업한다는 그의 철학은 분명 신선했다.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위험한 스포츠를 하면서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계를 넓히려고 노력하고 한계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살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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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조국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저자가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언론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2009년~2010년은 이명박 정권 (2008년~2013년) 초기였다. 특히 2009년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께서 잇달아 서거하신 해다.

저자의 올곧은 생각과 행동을 느낄 수 있었다. 글에서 느껴진 저자, 조국 장관은 기백있고 인간미 넘치는 선비 형님이었다. 책 중에 삼국지 황개 장군의 고육책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어쩌면 저자가 불의한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맨몸으로 맞섰던 그때도 황개 장군의 고육책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불의한 검찰과 비열한 언론의 실체를 절감하게 해준 저자와 저자의 가족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단박에 뭐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바라며 조급하게 안달복달하지 말자. 길게 보고 조금씩 그러나 굳세게 걸어가보자.
민주주의는……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 민주주의는 항상 허약한 정복이며, 따라서 심화시켜야 할 만큼 방어도 중요하다. 일단 도달하면 그 지속적인 존재를 보증할 민주주의의 문턱 같은 것은 없다.
필자는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자처한 황개黃蓋를 떠올렸다. 적벽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칠 화공火攻을 성공시키고자 만신창이의 몸이 되었던 오나라 장수 황개 말이다.
왜 검찰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수사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죄 수사에서 보여준 살기 어린 ‘열정’과 ‘집요함’의 반의반만큼도 보여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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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공식

 

리오네 살렘 外 지음
코랄리 살렘 그림
장석봉 옮김
궁리 펴냄

 

삽화를 곁들인 짤막한 이야기를 빌어 수학을 설명한다.
이야기가 많고 수학의 난이도는 낮다.
기분 좋게 읽었다.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솔직히 말하면, 허수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 식들을 유도해 낼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복잡해서... 아무튼 이제 여러분들도 i 같은 추상적인 수를 사람들이 왜 만들어 냈는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런 걸 잘 활용하면 수학이 좀더 쉽고 재미있어지거든요.
그러다 1993년 미국 캠브리지 대학의 앤드루 와일즈라는 수학자가 페르마의 이 마지막 정리를 증명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내놓은 증명은 엄청난 분량이었다. 정말로 책의 여백에 적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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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

세계적 수학자 54인이 쓴 수학 에세이

 

마이클 아티야, 알랭 콘, 세드릭 빌라니, 김민형 外 지음
장 프랑수아 다르스, 아닉 렌, 안느 파피요 엮음
권지현 옮김
궁리 펴냄

 

2008년, 프랑스의 고등과학연구소에 모여 있던 세계적인 수학자들의 사진과 그들의 짤막한 에세이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책을 읽고, 수학자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가 칠판임을 알게 됐다.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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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황홀한 역사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

 

토비아스 단치히 지음
심재관 옮김
지식의숲 펴냄

 

저자 토비아스 단치히는 1884년에 태어났다. 그는 유명한 수학자 앙리 푸앙카레의 제자다. 얼핏 보면 무척이나 오래된 사람 같은데, 이 책은 1930년에 1판이 발행되고 1953년에 4판이 발행된 현시대의 책이다 (저자는 1956년에 사망).

자연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복소수, 행렬 등으로 수체(數體)가 발전해 온 역사를 설명한다. 수학과 이야기의 균형이 좋다. 어렵지만도 않고, 쉽지만도 않다. 고등학교 수학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면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숫자 개념의 본질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숫자 개념은 대응(짝짓기) 개념과 배열(순서짓기) 개념 덕분에 존재한다. 이 사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환기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칸토어의 초한수(超限數) 개념을 설명할 때 중요하게 사용된다. 마치 시작할 때 심어둔 복선을 마무리하면서 멋지게 회수하는 잘 기획된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학적 귀납법이라고도 불리는 반복적 추론(reasoning by recurrence)의 사례들을 보면 인간은 분명 "무한정 반복되는 동일한 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 인간은 "실제 무한" 자체를 수학적 연구 대상으로 탐구한다.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무한"을 연구하기 위해 아름답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지만 칸토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한에 대한 연구는 곤란한 역설을 만나 멈칫하고 만다. 인류는 과연 무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책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수학자들이 수학을 하는 이유다. 수학자들은 쓸모 때문에 수학을 하지 않는다. 수학자들은 수학을 위해 수학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수학이란 학문의 성격이다. 수학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누적돼 만들어진 학문이다. 수학은 신이 선물한 완전무결한 무엇이 아니라, 많은 헛점을 끌어안은 채 살아 성장하는 무엇이다.

책은 수학적 사실과 실재적 사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며 마무리된다. 마지막 문장이 무척 철학적이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4.0 ★★★★).

 

몇 년이 지나면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바뀐다. 우리의 생각, 판단력, 감정, 열망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면 '나'라고 지칭되며 항구성을 부여받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기억이라는 줄에 순간이라는 구슬을 엮어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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