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박언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대립면의 꼬임"을 설명하던 도덕경이 자주 떠올랐다

한 해가 지날 즈음, 독서했던 책들을 되돌아보면 뭔가 하나로 엮여서 줄거리를 만드는 때가 있다. 이 책도 얼마전 읽었던 도덕경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과 엮여서 어떤 줄거리를 만들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도덕경이 말하는 도 (道, 대립면의 꼬임) 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의 합리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존재하는 세계 사이의 "대립과 꼬임"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자주 인용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회귀"가 연상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방인과 같은 해 (1942년) 에 출간된 이 책에서 니체가 자주 인용된다. 그것도 아주 열광적으로 인용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 거의 마지막 문장, 민음사, 김화영 번역)

 

 

카뮈 30살에 지은 책

인간은 언젠가 자기가 서른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책 표지에 실린 카뮈의 사진이 잘생겼다고 느꼈다. 잘생긴 서른 살 청년의 진지한 고민과 깊은 사유를 들었다. 서른 살 카뮈는 나보다 젊었지만 나보다 깊었다.

 

 

문학책이 아니라 철학책

카뮈는 자신의 철학적 고민을 치밀하게 추론하고 설명한다. 그런 카뮈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책세상 김화영 번역 (번역 별 3.0 ★★★) 과 열린책들 박언주 번역 (번역 별 3.0 ★★★) 을 번갈아 읽었다. 번역이 불만스럽더라도 만족스럽게 독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권의 번역서를 동시에 읽으면 된다. 만족스러웠다.

 

 

첫 문장이 강렬하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김화영 번역)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박언주 번역)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의 시지프들에게 카뮈가 말한다.
"버텨라. 행복한 당신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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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이방인>

독후감 2020. 11. 17. 05:51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소설 속 주인공은 쿨하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큰 야망 없이 산다. 살인죄로 기소된 법정에서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악착을 떨지 않는다. 그게 주인공이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삶의 반복을 꿈꾼다.

 

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는 것이었고 나는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내가 사나이라고 대답했다. 사나이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고 말했다.
지혜와 성의를 다했으나 그만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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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194X년 알제리의 도시 오랑이 배경이다. 실재한 적 없는 재난을 치밀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뚝심이 대단했다. 페스트 창궐이라는 재난을 맞아 분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개성 있었고, 개연성을 가진 그들의 모든 언행이 납득할만 했다.

 

번역이 아쉬웠다 (번역 별 2.5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공연 장면, 파늘루 신부의 설교 장면 등 중요한 몇몇 장면들이 아무리 정성껏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다른 번역본을 읽어 볼 것이다.

 

어느 한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한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쥐 사건에 대해 그처럼 떠들어대던 신문이 이젠 아무 소리도 없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서 죽고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었으니, 그것은 당연하다고나 할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즉 결혼하고, 계속해서 사랑하고, 그리고 일을 한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일을 한다.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우러러볼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뭡니까?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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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펴냄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박성현 옮김
심볼리쿠스 펴냄

 

지난 독서는 도덕경이었다. 도덕경을 읽을 때 '차라투스트라...'가 떠오르는 순간이 자주 있었다. '거피취차 (去彼取此)', 즉 '저쪽(피안)'의 삶을 추구하지 말고 '이쪽(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라고 말할 때, 획일된 가치체계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어린이가 돼라'고 비유할 때 등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차라투스트라...'를 읽기로 했다. 무려 2개의 번역본을 동시에 번갈아 읽는 사치를 누려봤다. 2개의 번역본을 함께 읽는 경험은 아주 좋았다. 정동호 옮김의 '차라투스트라...'는 책세상 니체전집 중 한 권으로 표준번역본이라 할 만한 안정감이 있었다. 박성현 옮김의 '짜라두짜...'는 문장이 과격할 정도로 선명해서 이해가 잘됐다. 두 개 번역본의 살짝 어긋나는 표현을 통해 니체의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었다.

 

니체는 가치를 규정하는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니 이제 사람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걸 모르는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선언한다. 니체는 선언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니체의 문장은 불친절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불친절한 철학자의 말에 귀기울여온 이유가 무얼까? 아직 좋은 줄 모르겠다. 묘하다.

 

두 책 모두 번역 좋았다 (책1, 책2).

 

제자들! 나는 이제 혼자 가.
자네들도 각자 혼자 가도록!
... 평생 학생으로만 남아 있다면 선생한테 아주 몹쓸 짓을 하는 것이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박성현)
진정, 나는 마비되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겁쟁이들을 자주 비웃어주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정동호)
무거운 것도 모두 가볍게 만들어라.
인간의 몸은 모두 춤꾼으로 만들어라.
인간의 정신은 모두 새처럼 날쌔게 만들어라.
... 노래해! 말로 떠들지 말고!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박성현)
그것이 그대의 영예다. 그대가 위대함을 추구해왔다는 것, 그것이 그대의 영예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주기도 하지. 그대는 위대하지 않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정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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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소나무 펴냄

 

도덕경은 문자만 알아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논어가 평이한 문자와 문장으로 짤막한 일상을 나열하는 이야기 책이라면, 도덕경은 노자의 철학적 주장을 정연하게 설명하는 논문이다. 최진석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한 이 책은 문자만 알고 읽는 도덕경과 맥락을 알고 있는 학자가 설명하는 도덕경이 어떻게 다른지 절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한 도덕경도 여전히 어렵고 막막했다. 도덕경은 무위(無爲)를 말한다. 나는 유위(有爲)의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이다. "하면 된다"가 국가적 구호였던 시대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무위(無爲)를 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억지로, 무위(無爲)한다는 것을 "사사롭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보지만 그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만 강하게 든다. 더 읽고 더 생각해봐야겠다.


저자는 철학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철학은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자가 그 상황에서 그 답을 생각한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 나름의 답을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 분야의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지만 본 적 없던 반가운 주장이었다.


번역 멋졌다 (번역 별 4.5 ★★★★☆).

 

우리는 유물론과 관념론을 반대되는 전혀 다른 두 세계관으로 보지만, 그 둘이 다 본질주의의 다른 두 가지 형태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보는 노자는 아마 이 둘과 동시에 결별해 버리는 또 하나의 전혀 다른 세계관일 것이다.
무위한다는 것은... 특정한 체계의 인도를 받거나 목적 혹은 욕망 등을 근거로 하지 않는 행위이다. 자연의 운행 모습(道)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덕 또한 그러한 것이다.
세계가 대립면들 사이의 묘한 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치를 모르고,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은 종말이 좋지 않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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