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황홀한 역사

NUMBER, The Language of Science

 

토비아스 단치히 지음
심재관 옮김
지식의숲 펴냄

 

저자 토비아스 단치히는 1884년에 태어났다. 그는 유명한 수학자 앙리 푸앙카레의 제자다. 얼핏 보면 무척이나 오래된 사람 같은데, 이 책은 1930년에 1판이 발행되고 1953년에 4판이 발행된 현시대의 책이다 (저자는 1956년에 사망).

자연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 복소수, 행렬 등으로 수체(數體)가 발전해 온 역사를 설명한다. 수학과 이야기의 균형이 좋다. 어렵지만도 않고, 쉽지만도 않다. 고등학교 수학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면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숫자 개념의 본질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숫자 개념은 대응(짝짓기) 개념과 배열(순서짓기) 개념 덕분에 존재한다. 이 사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환기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칸토어의 초한수(超限數) 개념을 설명할 때 중요하게 사용된다. 마치 시작할 때 심어둔 복선을 마무리하면서 멋지게 회수하는 잘 기획된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학적 귀납법이라고도 불리는 반복적 추론(reasoning by recurrence)의 사례들을 보면 인간은 분명 "무한정 반복되는 동일한 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더 나가 인간은 "실제 무한" 자체를 수학적 연구 대상으로 탐구한다.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무한"을 연구하기 위해 아름답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지만 칸토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한에 대한 연구는 곤란한 역설을 만나 멈칫하고 만다. 인류는 과연 무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책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이 있다. 하나는 수학자들이 수학을 하는 이유다. 수학자들은 쓸모 때문에 수학을 하지 않는다. 수학자들은 수학을 위해 수학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수학이란 학문의 성격이다. 수학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누적돼 만들어진 학문이다. 수학은 신이 선물한 완전무결한 무엇이 아니라, 많은 헛점을 끌어안은 채 살아 성장하는 무엇이다.

책은 수학적 사실과 실재적 사실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며 마무리된다. 마지막 문장이 무척 철학적이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4.0 ★★★★).

 

몇 년이 지나면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바뀐다. 우리의 생각, 판단력, 감정, 열망 역시 비슷한 변화를 겪는다. 그렇다면 '나'라고 지칭되며 항구성을 부여받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기억이라는 줄에 순간이라는 구슬을 엮어 만든 것일까?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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