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펴냄

 

독살사건, 그것도 왕에 대한 독살사건을 다루다보니 역사의 밝은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권력을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손자가 대립하는 이야기다. 후손 된 입장에서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막장 드라마의 재미가 있다. 숨 가쁘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독살사건에 연루된 다른 누구보다 소현세자와 정조대왕의 죽음이 가장 아쉬웠다.

... 청은 중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목적으로 소현세자를 데려간 것이다. 세자는 이렇듯 동아시아 정세를 놓고 자웅이 일척을 겨루는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 소현세자가 죽은 후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석철(소현세자의 아들)을 데려다 기르겠다고 했다... 청의 사신들은 돌아갈 때 꼭 소현세자의 묘에 들러 참배하는 등 소현세자의 죽음을 슬퍼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던 날에는 삼각산도 울었다. 뿐만 아니라 그 며칠 전에는 양주와 장단 등의 고을에서 한창 잘 자라던 벼 포기가 갑자기 하얗게 죽기도 했다. 이를 본 노인들이 슬퍼하며 "이는 상복을 입는 벼"라고 말했는데, 그 얼마 후 대상이 났다.

 

조선은 몽고제국이나 로마제국처럼 강력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실록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남긴 나라였다. 이런들 저런들 재밌는 나라의 후손인 것도 좋지 않은가.

 

 

Posted by ingee
,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지음
더봄 펴냄

 

정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군주였다. 그가 추진했던 개혁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어떤 어려움과 맞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정조만큼이나 매력적이었던 사도세자의 일면을 볼 수 있었다.

사도세자는 무예광이었다. 실제로 엄청난 무예의 고수이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18기 무예'라고 하는 것이 바로 사도세자가 정리한 무예이다.
정조는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다. ...... 아들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사도세자는 어린 아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언젠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도 독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정조시대의 주체적 진경문화는 19세기에 이르러 세계 최고의 인물 추사 김정희를 탄생시켰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중국의 문화를 뛰어넘은 그야말로 청출어람의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몰랐던 정조의 이야기를 많이 알 수 있었다. 다만 책이 너무 바른말로만 되어 있어서 책과 어긋나는 생각을 해보는 재미가 적었던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편안한 독서였다.

Posted by ingee
,

2020년 좋았던 책

독후감 2020. 12. 31. 13:21

2020년에는 33권의 책을 읽었다.
역사 분야 책을 조금 읽었고 문학과 철학 분야 책을 많이 읽었다. 특정 분야에 할애하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흡족해질 때까지 읽었다. 나름 괜찮았다. 

 

철학 분야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논어의 고구마 같은 묵직함과는 다른 사이다 같은 청량함. 또 다른 인생 책.

 

수학 분야

이해하는 미적분 수업
최고의 미적분 책은 아니었지만 재밌게 공부했다. 수학은 재미로 공부하는 게 제일.

 

과학 분야

종의 기원
드디어 출간된 좋은 번역. 꼭 봐야 하는 책.

 

사회/경제 분야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노동을 거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상상도 못한 미래를 상상해 본 독서.

 

문학 분야

시지프 신화
카뮈의 책은 다 좋다. 자매품/책 '이방인'도 추천.

 

역사 분야

한국전쟁과 기독교
우리도 불쌍했지만 미국도 불쌍했다. 종교에 속박된 사람들의 불쌍한 역사.

 

심리/인지과학 분야

죽음의 수용소에서
짤막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 삶에 지칠 때마다 다시 읽기로.

 

모두 좋은 책이었지만 굳이 한 권을 뽑자면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책을 읽고 힘을 얻었다.
올해 읽은 책들은 거를 책 없이 모두 좋았다. 반면 좋게 읽은 책의 작가들 때문에 실망하는 일이 많았다. 책도 작가도 양면이 있음을 느꼈다.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세상이 내게 맞춰줄 리 없다. 직시할 뿐이다.

 

Posted by ingee
,

Radiohead- Optimistic

악(樂) 2020. 12. 30. 22:29

추울 땐 따스한 음악.

https://youtu.be/mNXN9jMgqlw?si=lYAGDpZxEw3DEgEf

 

Posted by ingee
,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박언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대립면의 꼬임"을 설명하던 도덕경이 자주 떠올랐다

한 해가 지날 즈음, 독서했던 책들을 되돌아보면 뭔가 하나로 엮여서 줄거리를 만드는 때가 있다. 이 책도 얼마전 읽었던 도덕경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과 엮여서 어떤 줄거리를 만들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도덕경이 말하는 도 (道, 대립면의 꼬임) 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의 합리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존재하는 세계 사이의 "대립과 꼬임"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자주 인용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회귀"가 연상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방인과 같은 해 (1942년) 에 출간된 이 책에서 니체가 자주 인용된다. 그것도 아주 열광적으로 인용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 거의 마지막 문장, 민음사, 김화영 번역)

 

 

카뮈 30살에 지은 책

인간은 언젠가 자기가 서른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책 표지에 실린 카뮈의 사진이 잘생겼다고 느꼈다. 잘생긴 서른 살 청년의 진지한 고민과 깊은 사유를 들었다. 서른 살 카뮈는 나보다 젊었지만 나보다 깊었다.

 

 

문학책이 아니라 철학책

카뮈는 자신의 철학적 고민을 치밀하게 추론하고 설명한다. 그런 카뮈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책세상 김화영 번역 (번역 별 3.0 ★★★) 과 열린책들 박언주 번역 (번역 별 3.0 ★★★) 을 번갈아 읽었다. 번역이 불만스럽더라도 만족스럽게 독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권의 번역서를 동시에 읽으면 된다. 만족스러웠다.

 

 

첫 문장이 강렬하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김화영 번역)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박언주 번역)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의 시지프들에게 카뮈가 말한다.
"버텨라. 행복한 당신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ing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