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곽재식 지음
김영사 펴냄

 

재미있는 작가다. 표지 디자인도 만화 잡지처럼 재밌다.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다. 세균을 빌미로 우리 역사나 설화 속에서 이야기를 한 토막씩 꺼내 펼치는데, 적절하고 재밌었다. 외래어를 인용할 때 원어를 병기해 주는 배려도 좋았다.

 

가장 큰 차이는 중앙에 덩어리진 독특한 물질인데, 그 덩어리진 물질을 핵이라고 부른다... 모든 동물과 식물의 몸을 이루는 세포에는 핵이 있다... 그런데 세균에는 핵이 없다... 세균처럼 핵이 없는 생물을 핵 대신에 진정한 핵이 생기기 전의 원시적인 것이 있다고 해서 원핵생물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몸 안팎에 수십조 단위의 세균이 살고 있다는 점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 수십조라면 우리 몸의 세포 수와 비교해야 할 만큼 많은 숫자다.
그런데... 따로 기를 수 있는 세균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혼자 떨어져서는 살지 못하는 세균이 오히려 많았다... 많은 세균들은 여러 다른 세균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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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Spillover: Animal Infections and the Next Human Pandemic

 

데이비드 콰먼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펴냄

 

코로나19가 극성이다. 그런데 이번 독서를 통해 몇 년 전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스(SARS) 의 원인 바이러스도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인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는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재난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전조가 보였던 예고된 사건이었다.

사스도 코로나19도 동물들의 전염병이 사람에게로 넘어온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이 책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있었던 끔찍한 인수공통감염병 사건들과 그것의 해결을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을 기록한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이 대하소설 속에서 중요한 순간과 큰 걱정거리로 기록되었던 질병 목록은 마추포열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르부르크병(1967), 라사열(1969), 에볼라(1976), 에이즈 바이러스(1981), 에이즈 바이러스-2(1986), 신 놈브레 바이러스, 헨드라(1994), 조류독감(1997), 니파(1998), 웨스트나일(1999), 사스(2003), 그리고 2009년에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용두사미로 끝난 돼지독감 등이 있다.

 

저자가 이런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독자들에게 공포나 절망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인수공통감염병 현상을 앎으로써 지금보다 현명해지기를, 분별 있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인수공통감염병은 바이러스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이다. 그것의 해결도 사람에게 달린 일이다.

인간이 나무를 자르고 토종 동물을 도살할 때면 마치 건물을 철거할 때 먼지가 날리는 것처럼, 병원체가 주변으로 확산된다. 밀려나고 쫓겨난 미생물은 새로운 숙주를 찾든지 멸종해야 한다. 그 앞에 놓인 수십억 인체는 기막힌 유혹이다. 이들이 특별히 우리를 표적으로 삼거나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 리포터다.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다. 문장이 속도감 있고 영화를 보는 듯 생생했다.

바이러스는 어떻게 해서 은밀한 서식처로부터 세상에 나왔을까? 왜 하필 헨드라였을까? 왜 지금인가? ... "바로 저깁니다." 레이드가 말했다. "저게 그 빌어먹을 나무예요." 박쥐들이 모여드는 곳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번역이 아주 훌륭했다 (번역 별 4.0 ★★★★). 번역을 거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인명, 지명, 논문 제목 등에 원어를 병기해주는 배려도 좋았다. 잘 만든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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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뉴스타파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

 

친일청산은 친일파 후손을 처단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수도 없다. 안타깝게도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의 재력과 권력을 기반으로 이 사회에서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을 처단하자면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1950년 이전 일제 강점기에... 유학 비율은 전체 인구의 0.1~0.2% 수준... 반면 친일 후손 가운데 유학을 다녀온 비율은 27%...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나라 특정 학계의 1세대 학자로서 해당 학문의 기초를 닦고 틀을 세우는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
학계뿐만이 아니다. 친일 후손들 가운데는 법조계와 의료계, 예술계에도 이런 유학 경험을 경쟁력으로 삼은 1세대 '정초자'들이 적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은 4분의 3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친일 후손들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대조적인 인생행로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지점,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바로 학력의 차이다. 독립운동가 후손 가운데 학력이 중졸 이하인 사람이 40%나 됐다.

 

그리고 친일파 '후손'을 처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물을 수는 없다. 민족 배신자 처단은 해방 직후에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해방 직후 우리에겐 힘과 지혜가 모자랐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바람직한 미래를 합의하는 일이다. 친일파 후손들도 '조상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다운 삶은 선택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거기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친일 후손 한 명은 조상의 친일행적을 사과하며 말했다.)
그는 "개인적 불이익이 있더라도 감수할 것이고, 이것 역시 내 업보"라고 말하며 증조부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죄했다. 조상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은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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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봉유설 정선

이수광 지음
정해렴 옮김
현대실학사 펴냄

 

지은이 이수광은 광해군 시절의 실학자다. 지봉유설은 당시 이수광이 접한 모든 지식을 메모한 백과사전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줄거리도 없고 지식 분류 체계도 자의적이다. 하지만 언뜻언뜻 임진왜란 직후의 사회 분위기를 어림할 수 있는 점이 재밌었다. 특히 용맹한 의병들의 일화가 좋았다. 시간 속에 잊혀질 수 밖에 없는 기억들을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이 책의 역할임을 느꼈다.

 

비기에 서로 전해 오기를 "황려산에는 반드시 성인을 장사지내게 될 것이다."라 했는데, 곧 영릉(세종대왕의 능)인 것이다. 수천년 전에 이미 그것을 아는 자가 있었으니, 아아! 또한 이상한 일이다.
이순신은 무인 속에 있어서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니, 신묘년(1591) 서애 유성룡이 정승이 되어서 그를 쓸 만한 인재라고 하고 정읍현감에서 차례를 뛰어넘어 전라좌수사를 제수했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자기 집 종과 향병들을 모아서 의리를 떨쳐 왜적을 쳤다... 왜적들은 두려워하여 그를 홍의장군이라고 불렀다. 왜적이 물러간 뒤에... 방술을 배워 산으로 들어가 곡식을 끊고 거의 1년이 지나도록 먹지 않았다... 이는 대체로 연기의 법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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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펴냄

 

독살사건, 그것도 왕에 대한 독살사건을 다루다보니 역사의 밝은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도드라진다. 권력을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손자가 대립하는 이야기다. 후손 된 입장에서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막장 드라마의 재미가 있다. 숨 가쁘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독살사건에 연루된 다른 누구보다 소현세자와 정조대왕의 죽음이 가장 아쉬웠다.

... 청은 중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줄 목적으로 소현세자를 데려간 것이다. 세자는 이렇듯 동아시아 정세를 놓고 자웅이 일척을 겨루는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 소현세자가 죽은 후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석철(소현세자의 아들)을 데려다 기르겠다고 했다... 청의 사신들은 돌아갈 때 꼭 소현세자의 묘에 들러 참배하는 등 소현세자의 죽음을 슬퍼했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던 날에는 삼각산도 울었다. 뿐만 아니라 그 며칠 전에는 양주와 장단 등의 고을에서 한창 잘 자라던 벼 포기가 갑자기 하얗게 죽기도 했다. 이를 본 노인들이 슬퍼하며 "이는 상복을 입는 벼"라고 말했는데, 그 얼마 후 대상이 났다.

 

조선은 몽고제국이나 로마제국처럼 강력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실록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으로 남긴 나라였다. 이런들 저런들 재밌는 나라의 후손인 것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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