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은행나무 펴냄


생명이란 무엇일까?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뚜렷한 기준이 있을까?

그런 기준이 없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구나, 왠지 안심 되는 기분? DNA 발견의 긴박한 순간들을 설명한다. 책 중에서 DNA 발견자 크릭의 '열광의 탐구'라는 책을 소개하는데, 언젠가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저자는 스스로가 생명 과학자다. 저자의 연구 경험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생명은 순환하는 흐름 속에 놓인 존재다. 생명은 자연에서 음식물을 섭취하고, 섭취한 음식물은 생명의 몸과 피가 된다. 그리고 생명이었던 물질은 배설된다. 단단한 껍질 속에 싸여있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생명의 바다 속에서 흘러가는 물방울 정도의 독립성만 갖고 있을 뿐이다.


무리 없이 편안한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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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창비 펴냄


저자가 아내와 함께 정기적으로 참석한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소개한다. 저자는 아내를 F라고 소개한다. F는 활달하고 음악적 감수성이 풍부한 여인이다. 저자가 30대에 혼자 유럽을 여행하며 기록한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암울한 정서의 기행문이었다. 하지만, 60대에 이르러 아내와 함께한 여행을 기록한 이 책은 밝고 다정했다. 저자가 편안한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음악제에서 들은 음악과 음악제에서 만난 인물들을 저자의 개인적 사연에 녹여서 소개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들었던 음악을 함께 듣고 싶어진다. 기억에 남는 소개 음악은 포레의 레퀴엠이었다. 죽음을 심판하는 레퀴엠이 아니라 위로하는 레퀴엠이라고 한다.


저자는 재일교포이고 이책은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하지만 번역을 거쳤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좋은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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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대칭의 역사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 안기연 옮김

승산 펴냄


기하학과 대수학의 관계를 알게됐다. 기하학이 다루는 한 점을 x, y로 대신 나타낸 것이 대수학이다. 

수학자들의 자잘한 뒷 이야기와 수학 이론을 반반씩 다룬다. 재미 있는 구성이다. 자연수, 실수, 무리수, 허수 등, 수의 영역이 발전하는 역사와 그런 발전 속에서 유지되는 대칭의 개념을 소개한다. 특히 수학자 리(Lie)가 창안한 군(group)론과 현대 물리학의 초끈이론의 관계에 대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소개한다. 친절한 설명이었다. 번역도 좋았다.


이제 수학의 주변 이야기보다 수학 자체를 공부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조만간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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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이전 독서 '증오의 세기'는 흥미로웠지만 힘든 독서였다. 참혹한 전쟁과 인간의 증오심에 절망한 때문이었다. 이번 독서도 편한 독서는 아닐 것 같았다. 


전 지구인이 먹고도 남을만큼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 지금, 5초마다 한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 진보적인 교사들조차도 교육현장에서 이런 참혹한 기아에 대해 토론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유엔 소속 활동가다. 이 책은 지은이가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기아의 현실과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지은이가 설명하는 기아의 이유는 탐욕이다. 권력의 탐욕, 자본의 탐욕이 기아의 원인이다.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식민지 시절 오직 한가지 작물(땅콩)만 재배하여 종주국 프랑스에 수출하고 필요한 식량을 수입하는 왜곡된 경작 구조를 갖게 됐다. 지금이라도 경작 구조를 바꾸면 식량 자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식량 수입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정부 관료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현재의 경작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네갈 농민들은 풍요로운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굶어 죽는다. 권력의 탐욕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1970년, 칠레에서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굶어 죽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유의 무상배급을 공약으로 내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당시 칠레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아옌데가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값을 주고 사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칠레 정부에 대한 모든 협력을 거부했다. 결국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자본의 탐욕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희망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의 희망에서 어슴프레한 위안을 얻는다.

얇은 책이다. 깔끔한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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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세기

독후감 2012. 10. 3. 08:37

증오의 세기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이현주 옮김

민음사 펴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은 왕이 통치하는 세계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왕에 의한 통치가 끝났다. 2차 세계대전은 민족 국가간의 전쟁이었다. 나치 독일은 다른 민족을 절멸시키고 독일 민족의 생활공간을 넓히기 위해 세계 전쟁을 시작했다.


책이 기록하는 전쟁의 참상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가 떠나질 않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증오하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죽이던 일이 불과 수십년전에 세계대전이란 이름으로 실재했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은 (모든 인간은) 잔혹하고, 무지할 뿐 아니라, 증오에 찬 존재다. 나를 포함해서, 인간에겐 구원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읽기에 벅찰 정도로 두껍다. 저자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있어서 역사책을 읽는다는 느낌 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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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독후감 2012. 9. 8. 09:13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


강렬한 제목. 강렬한 내용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얇은 두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92세의 노인이다. 이 노인이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분노하라고 충고한다. 분노하되 폭력을 쓰지말라 한다. 부조리에 격분하여 테러를 자행하는 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나, 폭력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포기 없는 참여다. 모든 선거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며, 선거에서만 그치지 말고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모든 방법을 강구하여 참여하라 한다. 최악의 선택은 '내가 세상을 어쩌겠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것이다. 저자가 존경하는 롤 모델은 '아웅산 수치' 여사와 '간디'다. 그들은 폭력을 쓰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매끄러운 번역은 아니었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존경스러운 저자의 존경스러운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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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장하준 지음

김희정, 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저자는 자본주의를 긍정한다. 하지만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부정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유일무이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다. 

금융자본의 무책임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는 물질적 부만 쌓을 수 있다면 사회적 책임을 무시해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행복한가? 자유시장 자본주의 덕분에 고용불안이 높아진 사회에서 이땅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꿈과 적성을 포기하고 의사나 법률가 같은 안정된 직종을 선택한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성과의 재분배이다.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저자는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그런 사실을 차분히 설명한다. 존경할만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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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복음 강의

독후감 2012. 7. 30. 21:59

도마 복음 강의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을 찾아서


오쇼 지음

류시화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



도마 복음은 카톨릭으로부터 공인 받은 4대 복음서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초기 카톨릭 교단의 인위적인 첨삭이 덜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도마 복음을 근거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도마 복음은 예수님을 신의 아들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스승으로 소개한다.


우리의 마음에는 신이 존재한다. 우리는 신이 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욕망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 자유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욕망의 노예 역할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을 때 우리는 신과 하나가 된다.


저자는 존재의 본질에 관한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유머로 설명한다. 훌륭한 번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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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그 매혹의 과학

이야기의 본질과 활용

최혜실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 한다.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철학도 과학도 세상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찾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에 생긴 학문일 것이다. 바로 이 책이 주장하는 바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본능을 가졌으며, 이야기는 생각의 본질적인 형식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이다. 이야기는 엔터테인먼트 분야 뿐 아니라 철학, 정신분석학, 인지과학, 의학, 역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야기는 정보를 저장하고 실행하는 체계이다.

지금의 세계에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핸드폰조차 조약돌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만지며 놀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도록 만드는 세상이다. 

조리있게 잘 만든 책이다. 같은 주제로 추가 저작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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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다음과 같다.

x^n + y^n = z^n 과 같은 방정식이 있을 때, 

n이 3보다 크거나 같을 경우 이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0 이 아닌 x, y, z의 정수해는 없다. 


17 세기의 수학자 페르마는 '정리를 증명했다'는 기록만 남기고, '여백이 없다'는 이유로 증명 내용을 남기지 않았다. 그로부터 350 여년 동안 이 정리에 대한 증명은 수학자들 사이에서 난공불락의 수수께끼로 군림했다. 그러던 1994년 어느날, 미국의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가 마침내 이 정리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이 책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수학의 역사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페르마, 파스칼, 오일러, 갈루아, 힐베르트, 러셀, 괴델, 칸토어, 튜링, 유타카 타니야마, 고로 시무라, 켄 리벳 등 수학의 영웅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론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미친 영향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와일즈가 7년간의 고독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은 영화의 한장면 처럼 극적이었다. 

와일즈는 자신이 인용한 아이디어의 원조들이 모두 앉아있는 학회에서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이 사실이며 따라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었음을 발표했다.


깔끔한 번역이었다. 저자도 역자도 모두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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