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망각

뉴스타파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지음
다람 펴냄

 

친일청산은 친일파 후손을 처단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수도 없다. 안타깝게도 친일파 후손들은 조상의 재력과 권력을 기반으로 이 사회에서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힘 없는 사람들이 힘 있는 사람들을 처단하자면 세상을 뒤집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1950년 이전 일제 강점기에... 유학 비율은 전체 인구의 0.1~0.2% 수준... 반면 친일 후손 가운데 유학을 다녀온 비율은 27%...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나라 특정 학계의 1세대 학자로서 해당 학문의 기초를 닦고 틀을 세우는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
학계뿐만이 아니다. 친일 후손들 가운데는 법조계와 의료계, 예술계에도 이런 유학 경험을 경쟁력으로 삼은 1세대 '정초자'들이 적지 않다.
독립운동가 후손은 4분의 3이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친일 후손들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대조적인 인생행로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지점,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바로 학력의 차이다. 독립운동가 후손 가운데 학력이 중졸 이하인 사람이 40%나 됐다.

 

그리고 친일파 '후손'을 처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물을 수는 없다. 민족 배신자 처단은 해방 직후에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했어야 했다. 하지만 해방 직후 우리에겐 힘과 지혜가 모자랐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바람직한 미래를 합의하는 일이다. 친일파 후손들도 '조상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다운 삶은 선택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거기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친일 후손 한 명은 조상의 친일행적을 사과하며 말했다.)
그는 "개인적 불이익이 있더라도 감수할 것이고, 이것 역시 내 업보"라고 말하며 증조부의 친일행적을 공개 사죄했다. 조상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은 선택할 수 있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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