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신의 입자

 

리언 레더먼,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거대한 입자가속기를 보유한 페르미 연구소의 연구소장이자 유능한 실험물리학자였던 '리언 레더먼 (1922~2018)'의 책이다. 저자는 입자물리학 분야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탔다. 이야기 내내 유머를 섞어 설명하는데 유머의 적중율이 높아서 시종 키득거리며 독서했다.
유쾌한 독서가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훌륭한 번역 덕분이었다. 어려운 물리학 이야기와 저자의 뒤집어지는 유머를 자연스럽게 번역했다. 언어의 장벽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번역 별 4.5 ★★★★☆).

책은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 (Standard Model)'과 저자가 '신의 입자 (god particle)'이라고 별명 붙인 힉스(Higgs) 입자에 대해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쉽게 설명한다 (원래 저자는 '빌어먹을 입자 goddamn particle'라고 부르려 했는데 편집자가 언어순화를 위해 'damn'을 빼버렸다고).

 

독서를 통해 몇가지 새롭게 느낀 게 있다.

양자에 대한 오해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 이야기에는 빛에 관한 이론과 실험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나는 양자(量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음양(陰陽)의 양(陽)을 생각했다. 눈으로는 양자(量子)라는 글자를 보면서 머리 속에서는 양자(陽子)를 생각한 것이다. 양자(量子)의 양(量)은 '양이 많다 적다' 할 때의 양(量)이다. 빛과 어둠의 양(陽)이 아니다. 양자(量子)가 '양을 가진 알갱이'임을 이제야 이해했다. 광자는 빛의 알갱이였고, 전자는 전하의 알갱이였던 것이다.

의외로 현실적인 광속

광속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현실 속에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속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도 친숙하게 접하는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현실 속 모든 물질 속에는 원자가 존재하고, 모든 원자 속에는 광속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물질 속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작동하고 있다. 빛의 속도를 내는 움직임이 먼 우주 속 또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제야 실감했다.

도우미들

양자물리학 이해에 요긴한 도움을 준 셀파들이 있다. '슈뢰딩거가 들려주는 양자 물리학 이야기 (곽영직 지음)' 와 '플랑크가 들려주는 양자 이야기 (육근철 지음)' 였다. 특히 '슈뢰딩거가 들려주는 양자 물리학 이야기'는 '에너지 알갱이'란 표현으로 양자(量子)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줬다.

모르는 무엇을 알게 돼서 만족스러웠고, 또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돼서 만족스러웠다. 두꺼운 책만큼이나 두터운 만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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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과 불교

 

권오민 지음

민족사 펴냄

 

2015.10.18.
인도철학은 <자아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탐구한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자아, 즉 <아트만>을 탐구한다. 반면 불교는 <자아란 허구임>을 주장한다. 오류투성이의 인식이 지어낸 <자아>가 허구인 것을 모르고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욕심과 악(惡)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한 불교 안내서다.

 

초기 불교의 과감하고 용감한 문제 설정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불교는 실용적이지 않고 현학적인 모든 질문들을 잘라냈다. 독화살을 맞아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쏜 자가 누구인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쓸모 없는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정리한다. 그런 앎에는 어떤 실제적 이익도 없다고 잘라낸다. 용감한 주장이다. 반드시 죽게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뿐 아니겠는가?

 

한국인 저자의 한국어 저술이다. 난해한 사상을 조리 있게 설명한다.

 

2019.8.31.

베다 (BC 1500년 기록으로 추정)로 상징되는 인도철학의 '자아'에 대한 성찰과 초기불교 (BC 600년)의 '무아(無我)'에 대한 성찰을 요약해볼 수 있어 좋았다. '바가바드 기타'를 보던 중 다시 보고 싶어졌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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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이성비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칸트의 생애
1770년(46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교수 됨
1781년(57세) 순수이성비판 출간
1788년(64세) 실천이성비판 출간
1790년(66세) 판단력비판 출간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중 하나만 읽을 수 있다면 실천이성비판을 추천하겠다. 하지만,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고는 실천이성비판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실천이성비판이 순수이성비판에서 논의했던 개념들을 많이 인용하기 때문이다. 준수한 그리고 존경할만한 번역이었지만 순수이성비판 때보다 다소 거친 느낌이었다 (번역 별 3.5 ★★★☆).

사람이 사는 이유를 고민하게 됐다. 책에 의하면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산다. 사람은 선한 행위를 의무로 삼아야 한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선함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함을 선택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 선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가져다 주더라도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선함을 실천하는 사람이 인격자다. 그런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칸트와 논어가 서로 통한다고 느꼈다. 논어를 처음 읽었을 때는 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반복해 읽을수록 착하게 (도리에 맞게) 살기 위해서 지혜를 갈고 닦아야 함을 느꼈다. 반면 칸트를 처음 읽었을 때는 똑똑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읽으면서 착하게 사는 것이 도리임을 느꼈다.

멋진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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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임건순 지음
시대의창 펴냄

위정자들의 패권경쟁과 그에 따른 전쟁이 극심했던 중국의 전국시대, 강력한 규율과 이론으로 무장한 천민 출신의 정치 결사체가 있었다. 스승 묵자를 따르는 묵가 무리였다. 이들은 공격 당하는 작은 나라에 들어가 방어 전쟁을 지휘하기도 하고, 작은 나라를 공격하려는 큰 나라에 들어가 전쟁을 막기 위해 제후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묵자는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여 보다 현실성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묵가도 유가처럼 인의(仁義)를 주장했다. 유가와 달랐던 점은 인의(仁義)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묵가는 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이유가 인간 상호간의 이익(交利)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묵가는 유가와 달리 학문의 성과가 개인의 인격 수양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의 시스템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개인 상호간의 이익(交利)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조절하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회 시스템을 통해 모두가 신분에 상관 없이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 받는 것이 하늘의 뜻(天志)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하늘의 뜻(天志)을 잘 받드는 사람을 천자(天子)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생에 따른 신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기원전 400년경의 주장임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논어를 읽으며 공자님을 존경하게 됐다. 하지만 공자님의 이야기를 되씹을 때마다 해결되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이번 묵자 독서를 통해 그 허전함의 정체를 알게 됐다. 공자님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파격, 그리고 한계와 대안을 알게 됐다. 공자님과 논어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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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혜민 스님 지음
수오서재 펴냄

매년 겪는 일이지만 작년보다 한살 더 먹었다. 삶의 무게와 권태가 더 심해졌다. 무언가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잔다. 평화가 필요한 순간이다. 내가 이 책을 만난 이유일 것이다.

좋았던 이야기 하나.
당신은 무엇을 잘하거나 어디에 유용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사람이다.

좋았던 이야기 둘.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거든 조속한 해결을 재촉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동안 함께 버텨주어야 한다. '함께 버틴다'는 표현이 좋았다.

좋았던 이야기 셋.
깨달음은 시작일 뿐이다. 깨달은 후에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격을 닦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훌륭한 요약과 함께 책을 권해준 청년이 고마왔다. 젊은 사람에게서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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