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02편(위정) 03장

논어 2008. 1. 31. 07:01

子曰 자왈
道之以政 도지이정
齊之以刑 제지이형
民免而無恥 민면이무치
道之以德 도지이덕
齊之以禮 제지이례
有恥且格 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치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은 벌을 면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德(덕)으로 이끌고
禮(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아 바로 잡을 것이다.

 

2018.5.8.
德(덕)이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知(지)와 德(덕)을 대비해서 생각해보면, 知(지)는 모르는 것을 이해하는 머리의 능력을 뜻하고 德(덕)은 모르는 것을 포용하는 마음의 능력을 뜻하는 것 같다.

 

2019.4.10.
德(덕)은 知(지)와 대비되는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무리스럽지만 지금 생각하는 바를 메모하자면, 德(덕)은 삶을 통찰해서 얻은 목표와 그것을 추구하는 태도인 것 같다.

 

2022.5.5.
善(선)은 남들보다 잘하는 무언가를 뜻하고, 德(덕)은 그 善(선)을 행동에 옮길 결심까지 갖춘 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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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2장

논어 2008. 1. 30. 00:34

子曰 자왈
詩三百 시삼백
一言以蔽之曰 일언이폐지왈
思無邪 사무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전해오는) 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생각함에 사사로움이 없다'라 하겠다.

 

2014.9.2.
"사악함이 없다"를 "사사로움이 없다"로 수정했다. 삶이란 사사로움을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10.23.
시경의 시 중에는 지극히 사적인 연애시들이 많다. 그럼에도 공자께서는 "사사로움이 없다"고 평하셨다. 공자님의 말씀을 근거로 생각하자면 "사적인 것"과 "사사롭지 않은 것"은 양립 가능한 개념이다. "사사로운 것"을 "나만 좋은 것"으로 풀면, 사적인 일을 대할 때도 사사롭지 않은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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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2편(위정) 01장

논어 2008. 1. 29. 00:34

子曰 자왈

爲政以德 위정이덕

譬如北辰 비여북진

居其所 거기소

而衆星共之 이중성공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德(덕)으로 정치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과 같다.

거기 있으면

뭇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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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6장

논어 2008. 1. 28. 01:15

子曰 자왈
不患人之不己知 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 환부지인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다른 사람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염려하라.

 

2008.1.28.
자기를 몰라주는, 그래서 온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세상에 답답함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논어에 자주 나오는 구절이면서 삶에 자주 위안을 주는 구절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할 일을 하면 된다.

때로는 엄중한 꾸짖음으로 들릴 때도 있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억울해하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내가 정말 온당한 대우를 바랄만한 사람이 못될 수도 있다.
감정을 소비하지 말고 할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게 문장사이의 여백이 큰 것도 논어의 매력이다. 이렇게 논어 학이편이 끝난다.

 

2019.1.27.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만큼, 내가 남을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이지만, 내가 남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의 일이다. 남에게 관심을 쏟고 남을 알아주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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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1편(학이) 15장

논어 2008. 1. 27. 01:50

子貢曰 자공왈
貧而無諂 빈이무첨
富而無驕 부이무교
何如 하여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子曰 자왈
可也 가야
未若貧而樂 미약빈이락
富而好禮者也 부이호례자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삶을) 즐기고,
부유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子貢曰 자공왈
詩云 시운
如切如磋 如琢如磨 여절여차 여탁여마
其斯之謂與 기사지위여 

 

자공이 말했다.
詩(시)에 이르기를
베는듯, 가는듯, 쪼는듯, 다듬는듯 한다 (끊임 없이 연마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이르는 거군요? 

 

子曰 자왈
賜也 사야
始可與言詩已矣 시가여언시이의
告諸往而知來者 고저왕이지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이제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이야기를 일러주니 다가올 이야기까지 아는구나.

 

2022.11.08.
공자님께서 '未若貧而樂'이라고 樂(낙)에 대해 말씀하신다. 옹야편의 '回也不改其樂'이라고 하신 말씀과 이인편의 '不仁者 不可以長處樂'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공자님께서는 樂(낙)을 잃지 않는 삶이 중요함을 자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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