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 자공왈
夫子之文章 부자지문장
可得而聞也 가득이문야
夫子之言性與天道 부자지언성여천도
不可得而聞也 불가득이문야
자공께서 말씀하셨다.
공자님의 문장은
들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본성과 하늘의 도리에 대한 공자님의 말씀은
들어 이해할 수 없었다.
子貢曰 자공왈
夫子之文章 부자지문장
可得而聞也 가득이문야
夫子之言性與天道 부자지언성여천도
不可得而聞也 불가득이문야
자공께서 말씀하셨다.
공자님의 문장은
들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본성과 하늘의 도리에 대한 공자님의 말씀은
들어 이해할 수 없었다.
子貢曰 자공왈
我不欲人之加諸我也 아불욕인지가저아야
吾亦欲無加諸人 오역욕무가저인
子曰 자왈
賜也非爾所及也 사야비이소급야
자공이 말했다.
저는 타인이 저를 속박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저 또한 타인을 속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네가 다다른 곳이 아니다 (더 학습해야 한다).
공자께서 자공에게 물으셨다.
너와 안회 중 누가 뛰어나냐?
이에 (자공이) 대답했다.
제가 어찌 감히 안회와 견주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듣고는 열을 깨우치지만,
저는 하나를 듣고 고작 둘을 깨우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못하다.
나도 너도 그만 못하다.
자공의 말은 감칠맛이 있다.
겸손하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는다.
공자님은 인자하시다.
스스로를 낮춰서 제자의 마음을 다독이신다.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떻습니까? (저에 대해 평해주십시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어떤 그릇입니까?"
"귀한 그릇이다."
2008.4.19.
논어는 인물들의 대화를 가능한 적은 문자로, 의미만 축약해서 묘사한다. 종이가 아닌 죽간에 기록해야 하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그렇게 축약된 서술 속에서도 자공의 이야기에는 세련됨이 뭍어난다. 언변이 뛰어났던 사람이다.
공자께서는 자공을 그릇이라고 평하신다. 당신께서 '君子不器(군자불기,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라고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보면, '자공은 군자가 아니다'라고 평하신 셈이다. 그래도 그냥 그릇은 아니고 귀한 그릇이라고 위로해주신다. 어쨌든 심술궂다.
공자께서는 제자의 성향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하셨다. 자공은 그런 심술을 견뎌낼 만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2010.4.18.
공자께서는 학습을 통한 인격 연마를 강조하셨다. 공자께서 자공에게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아직은' 군자가 아니니 더욱 학습하라는 말씀이셨을 것이다.
자공이 곡삭제에서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절차를 없애려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禮(예)를 아낀다.
告朔(곡삭)은 매달 초하루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子貢問君子 자공문군자
子曰 자왈
先行其言 선행기언
而後從之 이후종지
자공이 군자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실천하고
그런 이후에 말하라.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삶을) 즐기고,
부유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詩(시)에 이르기를
베는듯, 가는듯, 쪼는듯, 다듬는듯 한다 (끊임 없이 연마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이르는 거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賜(사, 자공의 이름)야,
이제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지나간 이야기를 일러주니 다가올 이야기까지 아는구나.
2022.11.08.
공자님께서 '未若貧而樂'이라고 樂(낙)에 대해 말씀하신다. 옹야편의 '回也不改其樂'이라고 하신 말씀과 이인편의 '不仁者 不可以長處樂'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공자님께서는 樂(낙)을 잃지 않는 삶이 중요함을 자주 말씀하신다.
자금이 자공께 물었다.
공자께서 한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치를 들으시는데
이는 스스로 구하시는 것입니까? 누가 일러주는 것입니까?
자공께서 말씀하셨다.
공자께서는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을 통해 들으시는 것이라네.
선생님께서 스스로 구하신다 해도
다른 사람이 스스로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네.
자금은 공자님의 제자로 공자님보다 40세 어렸다.
자공은 공자님의 제자로 공자님보다 31세 어렸다. 자공은 논어에 특히 자주 등장한다. 논어 곳곳에서 자공과 공자님 사이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