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한다

소비사회가 잠식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 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나현영 옮김
현암사 펴냄

 

저자(지그문트 바우만)는 뚜렷한 국적도 없이 떠도는 떠돌이 철학자다. 그에게는 뿌리내릴 단단한 지반이 없다. 그래서 '유동성(Liquid)'이란 단어가 그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됐다. 저자가 보기에 급변하는 사회를 사는 현대인 모두가 단단한 지반을 잃은 유동성의 인간들이다. 60~70년대에는 후진국에서, 80~90년대에는 개도국에서, 2000년대 이후에는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저자의 생각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 영원하길 바라며 의지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해결한 문제보다 해결할 문제가 더 많다. 노인과 청년, 남성과 여성, 보수와 진보가 갈라져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갈등이 문제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저출산이 문제고,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이 문제고, 노인들의 빈곤이 문제다. 이 책은 이 문제들이 유럽 선진국들에게도 당면 과제임을 알려준다.

 

인터뷰어(리카르도 마체오)와 인터뷰이(지그문트 바우만)는 서면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들은 교육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얽히고설킨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생각할 때, 교육 제도를 개선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오가는 질문과 답변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무척 즐거웠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지적인 대화를 펼쳐가는 모습이 경이로왔다. 저자들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발췌한다.

 

유럽에서도 낮은 출산율이 사회 문제다.

(유럽 전역에서 계속 감소하고 있는) 현 출생률로 보아... "이민자는 위험이 아닌 자산"
(1. 혼성 애호와 혼성 혐오 사이 p12)

 

유동성 속의 인간에게는 새로운 것을 빨리 배우는 능력과 낡은 것을 빨리 잊는 능력이 필요하다.

"사방에 정보가 너무 많다. 정보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99.99퍼센트의 원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다."
( 7. 퇴폐는 박탈의 가장 교묘한 전략 p65)

 

유럽에서도 청년 세대의 빈곤이 사회 문제다.

전후 유럽사의 흐름에서... 먼저 '베이비 붐' 세대가 있었고, 각각 X세대와 Y세대로 불리는 세대가 뒤를 이었습니다. ... 가장 최근에는 Z세대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예고가 있었죠. ... 이 세대는 전후 최초로 사회적 지위가 하강 이동될 것이라는 전망을 맞닥뜨린 세대입니다.
( 8.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이 파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 분 p79)

 

유럽에서도 청년 세대의 일자리 부족이 사회 문제다.

대학 졸업장을 상자 속에 처박아놓고 배달원, 가게 점원, 택시 운전사, 웨이터 등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에 눌러앉는 졸업생들이 점점 더 늘고 있어요.
( 11. 실업자도 복권은 살 수 있지 않나요? p115)

 

소위 말하는 보통 또는 정상의 의미가 '통계적 다수일 뿐'이라는 지적이 통쾌했다.

통계적 다수에 속한다는 사실 외에 '정상'의 뜻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또 통계적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 말고 '비정상'의 뜻은요?
( 12. 정치적 문제로서 장애, 비정상, 소수의 문제 p122)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라는 사회 시스템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없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비자입니다. 다른 무엇이기보다 먼저 소비자며, 소비자로 존재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예요. ... 슈퍼마켓은 우리의 사원인 셈이에요. ... 쇼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쾌락의 부재뿐 아니라 인간 존엄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 14. 결함 있는 소비자와 끝없는 지뢰밭 p143)
박탈된 사람들이 빈민가나 다름없는 도시 특정 지역에 밀집해 사는 이유는 사회 정책 때문이 아니라 주택 가격 때문입니다.
( 14. 결함 있는 소비자와 끝없는 지뢰밭 p148)
우리가 경력을 쌓느라 배우자와 자녀를 등한시하는 사이 마케팅 전문가들은 보상의 형태로 항상 무언가를 구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죄책감을 자본화합니다.
( 20. 성숙기에 이른 글로컬라이제이션 p213)

 

우리의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지기를 희망하며 독서했다.

번역으로 인한 피로가 없었다.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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