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창비 펴냄

 

아버지의 늘그막 친구 박선생. 그는 6.25 전쟁 때 빨치산 토벌군이었다. 그리고 그의 형은 빨치산이었다. 그는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하염없이 사는' 사람이다.

(책 18% 위치)
어느 날 박선생이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나는 매일 밤 남은 의지를 쥐어짜 양치질을 한다. 그러는 이유는 대단치 않은 내일을 맞기 위해서다. 언제까지라고 기약할 수 없다. 다만 반복할 뿐이다. 소소한 의지를 갖고 반복한다. 누구나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의욕하고 반복한다. 일상을 반복하는 것과 체념하는 것은 다르다. 행여나 박선생의 하염없는 삶이 하염없이 체념하는 삶은 아니었기를 바랬다.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가난한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 말로 다 하기 힘든 고단한 인생을 산다. 책에는 그런 고단함이 그닥 나오지 않지만 같은 시기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무리 지으며 주인공은 원망 없이 아버지를 애도한다.

(책 마지막 문장)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좋았던 글귀를 덧붙여 본다.

(책 51% 위치)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책 마지막 '작가의 말')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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