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游曰 자유왈
喪致乎哀而止 상치호애이지
자유께서 말씀하셨다.
상례는 지극히 슬퍼하는 것에서 그쳐야 한다.
子游曰 자유왈
子夏之門人小子 자하지문소자
當灑掃應對進退則可矣 당쇄소응대진퇴즉가의
抑末也 억말야
本之則無 본지즉무
如之何 여지하
자유께서 말씀하셨다.
자하 문하의 제자들은
청소하고 응대하고 나서고 물러나는 일은 적절히 잘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단의 일이다.
근본에 대해서는 갖추고 있지 못하니
어찌된 일인가?
子夏 聞之曰 자하 문지왈
噫 희
言游 過矣 언유 과의
君子之道 孰先傳焉 군자지도 숙선전언
孰後倦焉 숙후권언
譬諸草木 비저초목
區以別矣 구이별의
君子之道 焉可誣也 군자지도 언가무야
有始有卒者 其惟聖人乎 유시유졸자 기유성인호
자하께서 (그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셨다.
저런
游(유)의 말이 과하구나.
군자가 道(도)를 대함에 어느 것을 먼저 전하고
어느 것을 나중으로 미뤄 게을리 한단 말인가?
초목에 비유하자면 (자라는) 구역이 다른 것이다.
(말단도 근본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이다.)
군자의 道(도)를 어찌 꾸며댈 수 있겠는가?
시작도 갖추고 끝도 갖춘 사람은 聖人(성인) 뿐일 것이다.
공자께서 무성에 가셨다.
(거기서) 현에 맞춰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찌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예전에 선생님(공자님)께 배우기를
군자가 도를 공부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공부하면 다스리기 편하게 된다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얘들아 偃(언, 자유의 이름)의 말이 옳다.
내가 한 말은 우스개였다.
子游(자유)는 공자의 제자다. 偃(언)은 子游(자유)의 이름이다.
당시 子游(자유)는 武城(무성)의 읍재를 지냈다. 武城(무성)은 노나라의 작은 마을이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문하에 없구나.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 뛰어났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 뛰어났고,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가 뛰어났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가 뛰어났다.
덕행이 뛰어난 顔淵(안연)은 顔回(안회)를 말한다.
冉伯牛(염백우)는 伯牛(백우)를 말한다.
仲弓(중궁)은 冉雍(염옹)을 말한다.
언어가 뛰어난 宰我(재아)는 宰予(재여)를 말한다.
정사가 뛰어난 冉有(염유)는 冉求(염구)를 말한다.
季路(계로)는 子路(자로)를 말한다.
子游爲武城宰 자유위무성재
子曰 자왈
女得人焉爾乎 여득인언이호
曰 왈
有澹臺滅明者 유담대멸명자
行不由徑 행불유경
非公事 비공사
未嘗至於偃之室也 미상지어언지실야
자유가 무성의 宰(재, 책임자)가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사람을 얻었느냐?
이에 대답했다.
'담대멸명'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일 함에 편법을 찾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제 방에 오지 않습니다.
자유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길 때 자주 잘못을 고하면,
욕을 당하게 된다.
친구를 사귈 때 자주 잘못을 지적하면,
소원하게 된다.
仁(인)은 실천이다.
이 실천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져야 한다.
가치가 높은 道를 실천할 때도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실현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공자님의 道는 時中之道(시중지도)다.
때에 맞게 상황에 맞게 길을 찾아야 한다.
자유의 말로 里仁(이인)편이 끝난다.
자유가 孝(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의 孝(효)는
잘 보살피는 것만을 이른다.
심지어 개나 말도
잘 보살피고 있으니
공경함이 없다면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유는 공자님의 제자로 공자님보다 45세 어렸다. 무성의 읍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