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내게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대통령 노무현은 자연인 노무현으로 돌아온다. 사실 이명박 당선자가 대통령 선거에 이겼다고 언론을 도배하고 인수위가 참여정부 접수한다고 할 때만 해도 억장이 무너진다거나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거나 마음이 허전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새벽은 마음이 왜 이리 허전할까? 어제 늦은 저녁 MBC가 방송한 노대통령 관련 다큐멘터리를 봐서 그런 걸까? 아니면 2004년 나를 길바닥으로 내몰았던 탄핵 동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다시 봐서 그런 걸까? 아니면 후보시절 문성근의 명연설을 다시 들어서 그런 걸까?

 
어제 저녁부터 나는 인터넷을 둘러보며 지난 5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5년은 노무현의 5년이기도 했지만 나의 5년이기도 했다. 노하우, 서프라이즈, 노하우21, 무브온21을 거치며 쓴 글 목록도 둘러보고 더불어 탄핵 동영상, 문성근 동영상, 유시민 동영상, 기타 등등 노무현과 내가 걸어온 길을 두루두루 둘러봤다.

 
나는 지금 대단히 슬프다. 괜히 봤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퇴임한다고 노무현이 죽는 것도 아닌데 괜히 둘러보다 마음은 우울해지고 궁상스럽게 눈가에 이슬도 맺히고,

 
노무현이 언론에 난타 당한 것도 슬프고 국민들에게 인간말종 취급 당한 것도 슬프고 그의 업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슬프고 노무현 두둔하려고 써갈긴 내 글도 슬프다. 다 슬프다.

 
내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돼 노무현 한 명 방어 못하고 무참하게 얻어터지는데 수수방관한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고 자괴감마저 느낀다.

 
이렇게 괜찮은 대통령이 이렇게 바보 취급을 당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수구 언론의 견제를 당하는 것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사실이 아닌데, 왜곡인데, 거짓말인데, 두 눈 다 뜨고 5년 내내 당하기만 한 노무현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다. 화가 난다.

 
노무현이 잘못한 것은 아군 적군 신경 안 쓰고 자신의 정치철학과 이념을 국정에 현실적으로 반영하려고 한 것 뿐이다.  아군이 하지 말라는데 대북송금 특검하고 이라크 파병하고 대연정 제안하고, 적군이 하지 말라는데 역사 바로 세우기하고 권위주의 청산하고 기득권 불편하게 만들고.

 
욕먹을 것 각오하고 적과 아군이 싫어하는 것 마다치 않으며 임기 마지막까지 국정을 수행한 노무현은 특정 세력이 아닌 모든 사람의 대통령이 되려 노력했으나 적군과 아군은 그 행위가 싫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이 노무현 탓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5년 동안 온갖 수모 겪으며 이제 그 임기를 끝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시간, 내가 자연인 노무현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해 줄 것이 없다.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하고 해 줄 것도 없고, 무기력하게 한숨만 내 쉬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무현의 모습만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민들은 바보다. 저런 대통령 다시는 못 만난다. 저렇게 사심 없이 국가와 국민을 사랑한 대통령은 다시 못 만난다. 무소불위의 권한은 쓰는 것 보다 안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른다. 대통령의 권한은 안 쓰면 안 쓸수록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민주주의가 된다는 것을 국민들은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야 대통령이다, 라는 봉건, 사대주의 의식을 가진 국민들에게 노무현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 기준에 노무현은 깜도 아니니까.

 
왜 대통령이 저렇게 힘이 없어? 계엄령 내리고 긴급조치 내리고 체육관 대통령 만들어야 힘이 있는 건가? 사법부 쥐고 흔들고 경찰, 국세청 쥐고 흔드는 것이 힘이 있는 건가? 무엇이 민주인지 선진국인지 모르는 국민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 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그렇게 동경하는 미국의 대통령들이 노무현처럼 통치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고 민주주의가 된 것이다, 라고 말이다.

 
박정희식, 전두환식이 좋다고 이명박 뽑는 국민 수준이 지속되는 이상 한국의 민주주의, 선진국은 요원하다. 그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가 나오는 것 뿐이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노무현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수 십년 해묵은 썩은 정치를 순식간에 바로잡고 권위로 가득찬 공무원 사회를 개혁하고 권력기관을 독립시키고 단군이래 최고의 안정적 경제기반을 구축한 노무현의 업적은 그 누가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잘한 것이 그렇게 많은데, 잘한 것 나열하려면 책을 쓸 정도인데 내가 왜 노무현 칭찬에 인색해야 하나. 잘한 것 못한 것 가감승제해도 잘한 것이 훨씬 많은데 꿀릴 것이 뭐가 있나. 언어가 거친 것? 이무리 거칠어도 지금의 이명박 당선자만 한가? 나는 그 누구 앞에서건 너무나도 떳떳하게 노무현 칭찬을 할 수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나? 왜 된장을 똥이라 하고 똥에 향수 뿌려 된장이라고 하나. 조중동과 수구세력이 아무리 된장을 똥이라고 몰아세워도 된장이 똥이 되진 않는다. 노무현의 정책은 커다란 옹기에 제대로 발효된 진짜배기 된장이며 그 된장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국가의 밑반찬으로 활용될 것이다.

 
좋건 싫건 내일이면 대통령이 바뀐다.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에겐 관심 없고 퇴임하는 대통령에게만 관심 있다면 내가 너무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인가?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하나. 싫은 건 싫은 거고.

 
퇴임하는 사람에겐 여전한 기대를 하고 있지만 취임하는 사람에겐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데, 유일한 기대라곤 경부운하 파지 말라는 것, 사고 치지 말고 참여정부가 하던 정책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 그것 밖에 없는데.

 
나는 월요일 날 텔레비전을 절대로 보지 않을 것이다. 취임식만 쏠리지 봉하마을 소식은 보도도 안 할 것 아닌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서울역에 나가 노대통령 귀향하는 모습이라도 먼 발치에서 보며 손 흔들어 주고 힘찬 박수를 보내줄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에게 보내는 존경과 경의의 표시이다.

 
기차 타고 내려가는 대통령에게 서울역 광장에서 난 이렇게 속으로 말 할 것이다.

 

노짱님,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노짱은 내게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by 김찬식
                                   http://www.moveon21.co.kr

Posted by ing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