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들

세계적 수학자 54인이 쓴 수학 에세이

 

마이클 아티야, 알랭 콘, 세드릭 빌라니, 김민형 外 지음
장 프랑수아 다르스, 아닉 렌, 안느 파피요 엮음
권지현 옮김
궁리 펴냄

 

2008년, 프랑스의 고등과학연구소에 모여 있던 세계적인 수학자들의 사진과 그들의 짤막한 에세이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책을 읽고, 수학자들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가 칠판임을 알게 됐다.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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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출판사 펴냄

 

저자는 침묵이 내면화된 북유럽계 미국인이다.

조용히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북유럽의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고, 아마도 제일 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옛 바이킹 생존 전략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1994년 박사 과정 공부를 시작하며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과학자의 삶을 선택한다.

진정한 과학자는 이미 정해진 실험을 하지 않는다.
지시받은 일을 하는 단계와 스스로 무엇을 할지 정하는 단계 사이의 이행은...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할 의사가 없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박사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일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빌을 만난다. 빌은 저자의 커리어 내내 저자 곁에서 많은 실험을 함께 한다.

나는 그가 파는 구멍 옆에 섰다. "금이라도 찾아요?"...
"아뇨, 그냥 땅 파는 걸 좋아해요." 그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구덩이에서 살았거든요."

 

과학자의 삶을 시작하며 저자가 처음 배운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었다.

나는 과학에 대해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실험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세상이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무들이 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논리를 이해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논리를 당연한 듯 적용하는 것보다 연구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과학책을 기대하고 골랐으나 이 책은 저자 호프와 그의 동료 빌의 우정에 관한 에세이였다. 훌륭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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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책세상 펴냄)
박언주 옮김 (열린책들 펴냄)

 

 

"대립면의 꼬임"을 설명하던 도덕경이 자주 떠올랐다

한 해가 지날 즈음, 독서했던 책들을 되돌아보면 뭔가 하나로 엮여서 줄거리를 만드는 때가 있다. 이 책도 얼마전 읽었던 도덕경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과 엮여서 어떤 줄거리를 만들었다.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가 도덕경이 말하는 도 (道, 대립면의 꼬임) 와 통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의 합리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인간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존재하는 세계 사이의 "대립과 꼬임"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니체를 자주 인용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 마지막 장면에서 "영원회귀"가 연상됐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방인과 같은 해 (1942년) 에 출간된 이 책에서 니체가 자주 인용된다. 그것도 아주 열광적으로 인용된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한 생애가 다 끝나 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다시 시작해 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 거의 마지막 문장, 민음사, 김화영 번역)

 

 

카뮈 30살에 지은 책

인간은 언젠가 자기가 서른이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그런 말을 하게 된다.

책 표지에 실린 카뮈의 사진이 잘생겼다고 느꼈다. 잘생긴 서른 살 청년의 진지한 고민과 깊은 사유를 들었다. 서른 살 카뮈는 나보다 젊었지만 나보다 깊었다.

 

 

문학책이 아니라 철학책

카뮈는 자신의 철학적 고민을 치밀하게 추론하고 설명한다. 그런 카뮈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책세상 김화영 번역 (번역 별 3.0 ★★★) 과 열린책들 박언주 번역 (번역 별 3.0 ★★★) 을 번갈아 읽었다. 번역이 불만스럽더라도 만족스럽게 독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권의 번역서를 동시에 읽으면 된다. 만족스러웠다.

 

 

첫 문장이 강렬하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김화영 번역)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박언주 번역)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세상의 시지프들에게 카뮈가 말한다.
"버텨라. 행복한 당신을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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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이방인>

독후감 2020. 11. 17. 05:51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소설 속 주인공은 쿨하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큰 야망 없이 산다. 살인죄로 기소된 법정에서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악착을 떨지 않는다. 그게 주인공이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며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마지막 순간 그는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삶의 반복을 꿈꾼다.

 

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나로서는 언제나 같은 날이 내 감방으로 밀려오는 것이었고 나는 언제나 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내가 사나이라고 대답했다. 사나이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까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누구나 다 안다고 말했다.
지혜와 성의를 다했으나 그만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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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194X년 알제리의 도시 오랑이 배경이다. 실재한 적 없는 재난을 치밀하게 상상해서 이야기를 만든 작가의 뚝심이 대단했다. 페스트 창궐이라는 재난을 맞아 분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개성 있었고, 개연성을 가진 그들의 모든 언행이 납득할만 했다.

 

번역이 아쉬웠다 (번역 별 2.5 ★★☆).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공연 장면, 파늘루 신부의 설교 장면 등 중요한 몇몇 장면들이 아무리 정성껏 읽어도 이해되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다른 번역본을 읽어 볼 것이다.

 

어느 한 도시를 제대로 알기 위한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쥐 사건에 대해 그처럼 떠들어대던 신문이 이젠 아무 소리도 없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에서 죽고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었으니, 그것은 당연하다고나 할까.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 즉 결혼하고, 계속해서 사랑하고, 그리고 일을 한다.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일을 한다.
아마 신으로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우러러볼 것 없이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 왜냐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뭡니까?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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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1905년부터 1906년까지 잡지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1905년 서구열강 러시아와 러일전쟁을 벌이며 자신감이 붙어가던 일본의 사회상을 옅볼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그 전시장에 도후 군이 들어가 구경하고 있는데, 독일 사람 부부가 들어왔다네. 그들이 처음에는 일본말로 도후 군에게 뭘 물어본 모양이야. 그런데 도후 군은 늘 그렇듯이 독일어를 써보고 싶어 환장한 사람 아닌가. ...
하지만 자넨 대학교수도 뭐도 아니지 않은가? 고작 영어 강독 선생이면서 그런 대가들을 예로 드는 건 잡어가 자신을 고래에 비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네.
아무래도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것은 대개 그리스에서 발원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미학자와 그리스는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네.
나는 주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무슨 업보로 이런 묘한 얼굴을 가지고 염치도 없이 20세기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일까.

무난한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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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저자는 화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이자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유대인이다. 책은 저자가 수행했던 화학 실험과 거기 얽힌 저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제목만큼 구성도 특이한 책이다.

길을 잘못 들어서는 사치도 스스로 허락하지 못한다면 스무 살일 자격이 없다.
매우 용기 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조금밖에 그리고 그것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것 같은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저주했다.
실수를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엄격해진다.

번역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번역 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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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펴냄

좋은 이웃이 우리 곁을 떠나는 것은 언제나 슬프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당신 아직도 모르겠어?" 루시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 상태가 최고라는 건, 더 나아질 게 없다는 뜻이잖아."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에필로그)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괜찮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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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윤성근 지음
이매진 펴냄

 

글쓴이는 중고서점을 운영한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많은 독서가들을 만나야 하는데, 그 과정을 인터뷰로 포착해서 기록했다.

 

'책이 좀 많아서' 널찍한 아파트를 책들에게 양보하고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노년의 독서가부터 대부분의 책들을 주변에 나눠주고 단촐한 책장만 갖고있는 청년 독서가까지 여려 유형의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책을 소개한다.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쁜 사람이 없는지 인터뷰어의 말도 인터뷰이의 말도 모두 따스했다.

 

시종일관 '왜 읽는가?'라는 질문이 계속된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익한 무엇을 바라지 않고 읽는다는 대답이 계속된다. 사람과의 만남이 그렇듯 책과의 만남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매력적인 사람과의 만남 그 자체가 즐거운 일인 것처럼 책과의 만남도 만남 그 자체가 좋은 일인가보다.

 

집 근처에 사람 좋은 조그만 단골 책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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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1877~1962) 지음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펴냄


고등학교 때 읽은 책을 정말 오랫만에 다시 읽었다. 무척 생소했다. 책은 그대로지만 나 자신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사춘기 때보다 주인공 싱클레어에게 조금 더 공감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성장을 이끌어주는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이 실재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 내면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흠 잡을 데 없는 번역이었다 (번역 별 4 ★★★★). 주인공의 한마디가 귀에 맴돈다.

이제 제대로 한번 살아 보고 싶고 내 안의 뭔가를 세상에 주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세상과 싸워 보고 싶은 절절한 갈망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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