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소나무 펴냄

 

도덕경은 문자만 알아서는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논어가 평이한 문자와 문장으로 짤막한 일상을 나열하는 이야기 책이라면, 도덕경은 노자의 철학적 주장을 정연하게 설명하는 논문이다. 최진석 교수가 번역하고 해설한 이 책은 문자만 알고 읽는 도덕경과 맥락을 알고 있는 학자가 설명하는 도덕경이 어떻게 다른지 절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한 도덕경도 여전히 어렵고 막막했다. 도덕경은 무위(無爲)를 말한다. 나는 유위(有爲)의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이다. "하면 된다"가 국가적 구호였던 시대의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무위(無爲)를 하라"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억지로, 무위(無爲)한다는 것을 "사사롭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보지만 그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만 강하게 든다. 더 읽고 더 생각해봐야겠다.


저자는 철학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철학은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자가 그 상황에서 그 답을 생각한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 나름의 답을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한다. 철학 분야의 이런저런 책들을 읽었지만 본 적 없던 반가운 주장이었다.


번역 멋졌다 (번역 별 4.5 ★★★★☆).

 

우리는 유물론과 관념론을 반대되는 전혀 다른 두 세계관으로 보지만, 그 둘이 다 본질주의의 다른 두 가지 형태일 뿐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보는 노자는 아마 이 둘과 동시에 결별해 버리는 또 하나의 전혀 다른 세계관일 것이다.
무위한다는 것은... 특정한 체계의 인도를 받거나 목적 혹은 욕망 등을 근거로 하지 않는 행위이다. 자연의 운행 모습(道)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덕 또한 그러한 것이다.
세계가 대립면들 사이의 묘한 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치를 모르고,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은 종말이 좋지 않다.

 

Posted by ingee
,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EBS <인문학 특강> 최진석 교수의 노자 강의

최진석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6. 10.16.

세상은 나의 의지나 기대와 상관 없이 변한다. 세상의 변화 때문에 고통 받는 이유는 세상을 보여지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배제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가치에는 양면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모든 경계를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하는 세상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최진석 교수는 간결하고 인상적인 질문을 던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 당신은 보편적 이념의 수행자입니까, 자기 꿈의 실현자입니까?
  • 당신은 바람직함을 수행하며 삽니까, 바라는 것을 실행하며 삽니까?
  • 당신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까, 유일한 자기입니까?

 

활자도 큼직큼직하고 내용도 시원시원했다. 즐거운 독서였다.

 

2020. 8.17.

철기 문명의 도입과 이로 인한 혼란 그리고 노자 철학의 등장이라는 '맥락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그리고 중국 문자의 의미 변천사를 동원해 '노자가 의도했던 뜻은 이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았다. 도덕경의 극히 일부만 발췌했지만 그렇게 읽은 도덕경 구절은 다른 어느 책의 해설보다 자연스러웠다.

 

 

Posted by ingee
,

탁월한 사유의 시선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저자의 문체가 나와 잘 맞았다. 모든 글이 잘 읽히고 잘 이해됐다.
철학이 무엇인지 반복해서 말한다. 그리고, 철학이 왜 필요한지 반복해서 말한다.

책에 의하면 철학이란 남이 쌓아올린 철학지식을 뜻하는 명사가 아니라 자신이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다. 그리고,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개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현실을 인식하고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사회는 이제 선도력을 발휘해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 가려면 높은 위치에서 현실을 조감하고 고민해서 길을 찾아야 한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 위치시켜야 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탁월한 사유의 시선').

독서를 마치고 흡족했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다른 사람이 한 사유의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p7, 서문)
아무리 철학적인 지식이 많아도 '철학'을 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철학적 지식,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은 쓰임을 갖고 있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입니다.
(p114, 2장 선도: 이끌다)
한마디로 대답은 '기능'이지만, 질문은 '인격'입니다.
(p126, 2장 선도: 이끌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꿈입니다. 가능해 보이는 것은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괜찮은 계획일 뿐입니다.
(p171, 2장 선도: 이끌다)
거듭 말하지만, 이론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결과물입니다. 철학적 사유는 자신이 직접 세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일이지요.
(p229, 3장 독립: 홀로 서다)
장자는 '장자' '대종사'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 ... 인격적으로 참되지 않으면 참된 지식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열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p241, 4장 진인: 참된 나를 찾다)

 

Posted by ingee
,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The Problem with Work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반노동의 정치, 그리고 탈노동의 상상


케이시 윅스 지음
제현주 옮김
동녘 펴냄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는 유쾌한 유머일 거라고 짐작했다.
제목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을 맡으면 프로답게 하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조리한 제목으로 시작해서 '열심히 하자'는 격려로 끝나는 달달한 스토리를 상상했다. 그런데 틀렸다. 생각보다 진지하고 무거운 책이었다.


우리는 일이 인생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한다. 삶의 필수 요소라거나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다. 하지만 당연함에 묶여 있으면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없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인지 삶인지 용기있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감히 노동철폐나 기본소득 같은 담론을 욕망해보아야 한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그 시대의 담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 담론은 현실이 된다. 상상하면 이룰 수 있다. 문제는 상상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용기의 있고 없음이다.


인공지능과의 경쟁 때문에 일자리에서 도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만연한 지금이, 노동은 기계에게 맡기고 사람은 삶을 누리는 유토피아를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할 때다.


번역은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거친 번역을 감수하고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번역 별 3 ★★★).

 

고된 노동이 정말 그렇게 위대한 것이라면, 부자들은 그걸 모두 독차지했을 것이다. -- 노동조합 운동가
노동자가 물리적 노력뿐 아니라 감정적 기술, 정서적 역량, 소통 능력까지 제공하기를 요구하는 일자리가 많아질 때, 다시 말해 자아의 더 많은 부분이 노동과정으로 끌려들어 가고 관리되어야 할 때,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는 분명히 점점 더 심각해진다.
풀타임의 평생에 걸친 안정적 일자리 모델을 사회 규범으로 여기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일에 기초한 혜택을 얻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질 때, (기본소득 요구는) 훨씬 합리적인 방법을 제공해준다.

 

Posted by ingee
,

인도철학과 불교

 

권오민 지음

민족사 펴냄

 

2015.10.18.
인도철학은 <자아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탐구한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자아, 즉 <아트만>을 탐구한다. 반면 불교는 <자아란 허구임>을 주장한다. 오류투성이의 인식이 지어낸 <자아>가 허구인 것을 모르고 그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욕심과 악(惡)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한 불교 안내서다.

 

초기 불교의 과감하고 용감한 문제 설정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불교는 실용적이지 않고 현학적인 모든 질문들을 잘라냈다. 독화살을 맞아 죽어가는 사람에게 그것을 쏜 자가 누구인지,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쓸모 없는 호기심에 불과하다고 정리한다. 그런 앎에는 어떤 실제적 이익도 없다고 잘라낸다. 용감한 주장이다. 반드시 죽게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뿐 아니겠는가?

 

한국인 저자의 한국어 저술이다. 난해한 사상을 조리 있게 설명한다.

 

2019.8.31.

베다 (BC 1500년 기록으로 추정)로 상징되는 인도철학의 '자아'에 대한 성찰과 초기불교 (BC 600년)의 '무아(無我)'에 대한 성찰을 요약해볼 수 있어 좋았다. '바가바드 기타'를 보던 중 다시 보고 싶어졌던 책이다.

 

Posted by ingee
,

실천이성비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칸트의 생애
1770년(46세)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철학교수 됨
1781년(57세) 순수이성비판 출간
1788년(64세) 실천이성비판 출간
1790년(66세) 판단력비판 출간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중 하나만 읽을 수 있다면 실천이성비판을 추천하겠다. 하지만,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고는 실천이성비판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실천이성비판이 순수이성비판에서 논의했던 개념들을 많이 인용하기 때문이다. 준수한 그리고 존경할만한 번역이었지만 순수이성비판 때보다 다소 거친 느낌이었다 (번역 별 3.5 ★★★☆).

사람이 사는 이유를 고민하게 됐다. 책에 의하면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산다. 사람은 선한 행위를 의무로 삼아야 한다. 사람은 이성을 통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선함을 선택하지 않는다. 선함을 선택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 선한 행동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가져다 주더라도 그것이 선하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선함을 실천하는 사람이 인격자다. 그런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칸트와 논어가 서로 통한다고 느꼈다. 논어를 처음 읽었을 때는 착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반복해 읽을수록 착하게 (도리에 맞게) 살기 위해서 지혜를 갈고 닦아야 함을 느꼈다. 반면 칸트를 처음 읽었을 때는 똑똑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읽으면서 이성을 부여받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착하게 사는 것이 도리임을 느꼈다.

또 하나의 인생 독서였다.

 

Posted by ingee
,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임건순 지음
시대의창 펴냄

위정자들의 패권경쟁과 그에 따른 전쟁이 극심했던 중국의 전국시대, 강력한 규율과 이론으로 무장한 천민 출신의 정치 결사체가 있었다. 스승 묵자를 따르는 묵가 무리였다. 이들은 공격 당하는 작은 나라에 들어가 방어 전쟁을 지휘하기도 하고, 작은 나라를 공격하려는 큰 나라에 들어가 전쟁을 막기 위해 제후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묵자는 공자의 학문을 계승하여 보다 현실성 있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묵가도 유가처럼 인의(仁義)를 주장했다. 유가와 달랐던 점은 인의(仁義)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묵가는 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이유가 인간 상호간의 이익(交利)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묵가는 유가와 달리 학문의 성과가 개인의 인격 수양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의 시스템 구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개인 상호간의 이익(交利)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조절하고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회 시스템을 통해 모두가 신분에 상관 없이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 받는 것이 하늘의 뜻(天志)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하늘의 뜻(天志)을 잘 받드는 사람을 천자(天子)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생에 따른 신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기원전 400년경의 주장임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논어를 읽으며 공자님을 존경하게 됐다. 하지만 공자님의 이야기를 되씹을 때마다 해결되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이번 묵자 독서를 통해 그 허전함의 정체를 알게 됐다. 공자님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과 파격, 그리고 한계와 대안을 알게 됐다. 공자님과 논어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Posted by ingee
,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1712~1778) 지음
김중현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


시대상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1755년 출간됐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1781년)'이 출간되기 30여년 전이고, 다윈의 '종의기원 (1859년)'이 출간되기 100여년 전이다.

책의 주제
1753년 루소는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서 디종 아카데미가 내건 다음과 같은 논문 현상공모를 접한다.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자연법은 자연의 본성이 규정하는 법이다. 즉, 이 공모는 인간 불평등이 자연본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루소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미개인
루소는 자연 속의 미개인과 사회 속의 문명인을 비교한다. 루소가 추정한 미개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은 자유인이다. 미개인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삶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욕심을 모른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비굴해질 일이 없다. 자연 속의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모두 자유롭다.

문명의 발달과 인류의 타락
문명은 인류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다. 인간은 문명의 힘으로 생존에 필요한 정도를 넘는 잉여를 만들어 냈다. 잉여와 더불어 탐욕이 생겨났다. 탐욕을 채우는 과정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났고 복잡한 사회구조가 발전했다. 불평등의 기원은 문명이었다. 문명을 발전시킬수록 불평등이 심화됐다.
1750년대의 루소는 사회 발전의 최종 귀착지가 전제군주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전제군주제 아래서 인간은 다른 의미로 평등해진다. 전제군주에게 복종해야 하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되 모두 예속적이다.

희망이 있다면
루소가 희망을 가진 것은 동정심이었다. 동정심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성이다. 동정심은 이기심을 극복하는 힘이며, 법(법은 문명의 결과다) 없이도 살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전제군주는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분열시키려 시도한다. 이런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문명의 저주를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동정심일 것이다.

얇은 책이었지만 번역된 글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아쉬운 번역이었다 (번역 별 2.5 ★★☆).


Posted by ingee
,

바가바드 기타

The Bhagavad Gita


함석헌(1901~1989) 옮김,주석
한길사 펴냄


고대 인도에 '아르주나'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날 큰 전쟁을 앞두고 들판에 섰는데 그가 싸울 상대는 그의 형제들과 친척들과 스승들이었다. 아르주나는 그들을 죽이고 영광을 얻느니 차라리 자기가 죽고 끝내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삶을 포기하려 한다. 그때 '크리슈나' 신(神)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지혜를 가르쳐주며 "싸우라"고 아르주나를 일으켜 세운다.

요즘 내가 하는 고민이었다. 어떤 신(神)이 "더 살테야?" 라고 물으면 "뭐 딱히" 라고 대답할 참이었다. 배 고픈 늑대가 저 살겠다고 달려들면 "그래라" 하고 목숨을 양보할 참이었다. 바가바드 기타의 신(神)은 "꼭 더 살아. 일어나 싸워. 거기엔 이런 이유가 있어" 라고 설명해준다. 지금 내게 절실한 설명이었다.

괜찮은 번역이었다 (번역 별 3.5 ★★★☆).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편안하게 옮긴 점은 좋았으나, 씨알,속알,알짬,구경,지경 같은 낯선 용어들을 설명 없이 사용하는 점이 조금 불편했다.



Posted by ingee
,

키케로의 의무론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키케로(BC106~BC43) 지음
허승일 옮김
서광사 펴냄


키케로는 기원전 50년경의 로마 정치인이다. 그는 황제가 되려는 카이사르에 맞서 공화정을 수호하려했다. 그러다 결국 카이사르의 후예들에게 죽음을 당했다. 이 책은 키케로가 죽기 얼마 전에 그리스에서 유학하고 있던 아들에게 전한 편지다. 그는 편지를 통해 윤리학에 대해,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윤리학에 대한 고민('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왜 살아야 하는가?')과 맞닿아 있음을 새롭게 느꼈다. 독서모임을 통한 토론 덕분이었다. 개인적인 독서에서 그쳤다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라틴어 원전을 직접 번역했다고 하는데, 그닥 좋지 않았다. 읽을만은 했다 (번역 별3 ★★★).


Posted by ing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