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4.24 논어 14편(헌문) 18장
  2. 2009.04.23 논어 14편(헌문) 17장
  3. 2009.04.13 논어 14편(헌문) 10장
  4. 2008.03.15 논어 03편(팔일) 22장

논어 14편(헌문) 18장

논어 2009. 4. 24. 08:29

子貢曰 자공왈
管仲 非仁者與 관중 비인자여
桓公 殺公子糾 환공 살공자규
不能死 又相之 불능사 우상지
子曰 자왈
管仲相桓公覇諸侯 관중상환공패제후
一匡天下 民到于今 受其賜 일광천하 민도우금 수기사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미관중 오기피발좌임의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개약필부필부지위량야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자경어구독이막지지야

 

자공이 말했다.
관중은 仁(인)하지 못한 사람 아닙니까?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을 때
(관중은) 따라 죽지 못했고, 더구나 (환공 밑에서) 재상까지 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재상이 되어 환공을 제후들 중의 패자로 만들었다.
일거에 천하를 바로 잡아 백성들이 지금까지도 그의 혜택을 보고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나 역시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했을 것이다 (다른 민족에게 정복 당하여 그들의 풍속을 따랐을 것이다).
어찌 평범한 사람이 알량한 사실을 위해
개천에서 목을 메어 죽은 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과 비교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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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14편(헌문) 17장

논어 2009. 4. 23. 08:35

子路曰 자로왈

桓公殺公子糾 환공살공자규

召忽死之 管仲不死 소홀사지 관중불사

曰未仁乎 왈미인호

子曰 자왈

桓公九合諸侯 환공구합제후

不以兵車 불이병거

管仲之力也 관중지력야

如其仁 여기인

如其仁 여기인

 

자로가 말했다.

(제나라) 桓公(환공)이 공자 糾(규)를 죽였을 때,

召忽(소홀)은 따라 죽었으나 管仲(관중)은 따라 죽지 않았습니다.

仁(인)하지 못하다 해야겠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桓公(환공)은 제후들을 아홉번이나 규합하면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管仲(관중)의 노력 때문이었다.

그 정도면 仁(인)하다 할 수 있다.

그 정도면 仁(인)하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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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14편(헌문) 10장

논어 2009. 4. 13. 09:45

或問子産 혹문자산
子曰 惠人也 자왈 혜인야

 

누군가 (정나라의 재상인) 子産(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다.

 

問子西 문자서
曰 彼哉彼哉 왈 피재피재

 

(초나라의 재상인) 子西(자서)에 대해 물었다.
이에 그사람은... 그사람은... 하셨다 (말씀을 피하셨다).

 

問管仲 문관중
曰 人也 왈 인야
奪伯氏 騈邑三百 탈백씨 병읍삼백
飯疏食 沒齒無怨言 반소사 몰치무원언

 

(제나라의 재상인) 管仲(관중)에 대해 물었다.
이에 말씀하셨다. 인물이다.
(관중은) 백씨에게서 병읍 삼백을 뺐었다.
(그러나 공정하게 처리된 일임을 이해시켰기 때문에)
(백씨는) 거친 밥을 먹으면서도 평생 원망하지 않았다.

 

子産(자산)은 공자님보다 조금 앞선 시대의 인물이다.

子西(자서)는 공자님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자서는 공자님이 초나라에서 등용되는 것을 가로막은 악연이 있다.

管仲(관중)은 공자님보다 100여 년 앞선 시대의 인물이다. 관중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강국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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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03편(팔일) 22장

논어 2008. 3. 15. 08:57

子曰 자왈
管仲之器小哉 관중지기소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그릇이 작았다.

 

或曰 혹왈
管仲儉乎 관중검호
曰 왈
管氏有三歸 관씨유삼귀
官事不攝 관사불섭
焉得儉 언득검

 

누군가 물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관중은 부인이 셋이나 있었고,
집안 일을 보는 사람들도 일을 겸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찌 검소했다 하겠는가?

 

然則管仲知禮乎 연즉관중지례호
曰 왈
邦君樹塞門 방군수색문
管氏亦樹塞門 관씨역수색문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방군위양군지호 유반점
管氏亦有反坫 관씨역유반점
管氏而知禮 관씨이지례
孰不知禮 숙부지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이에 대답하셨다.
임금이 수색문(집 안에 두는 낮은 담장,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수색문을 썼고,
임금이 다른 임금을 맞아 반점(술잔 받침, 역시 제후만 쓸 수 있었다)을 쓰면
관중도 반점을 썼다.
관중이 예를 알았다 하면,
누군들 예를 모르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중국의 패자로 만든 명재상이다. 공자님보다 100여 년 전 사람이다.

집안에서 팔일무를 쓰는 계씨의 예의 없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 이번 장의 주제는 禮(예)를 바로 잡아 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관중은 당시 전설적인 명재상이었다. 공자께서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까닭은 관중의 행적을 빌어 스스로의 세도를 정당화 했던 당시 노나라 권문들을 비판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Posted by in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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