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시집

 

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펴냄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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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지브리 음악감독과
뇌과학자의 이토록 감각적인 대화

 

히사이시 조, 요로 다케시 지음
이정미 옮김
현익출판 펴냄

 

지브리 만화영화를 통해 훌륭한 음악을 알려온 히사이시 조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분량이 적다. 음악가 히사이시 조와 뇌과학자 요로 다케시의 대담집인데, 히사이시 조가 인터뷰어 역할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보다 요로 다케시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책 어디에도 '음악을 듣는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음악을 주제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나이 든 아저씨들의 술자리 잡담 같다. 다만 대화의 분위기는 따스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3.5 ★★★☆).

 

완전히 노망난 척하지만 사실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런 어르신은 멋있지요.
(책 89% 위치. 제6장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 유쾌한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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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대통령 비서실이 직접 엮은 문재인 정부 5년의 철학과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 말글
대통령 비서실 엮음
김영사 펴냄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관이 바른 사람이다. 그의 역사 인식을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됐다. 임시정부는 3.1운동에서 비롯됐다. 임시정부가 창설한 독립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시작이다. 독립운동과 6.25 전쟁에서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그런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애국심을 고양하는 길이다." ... 대통령 연설문에서 인용하는 역사적 사실이 많았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웠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미래를 외세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우리는 장차 통일을 이루고, 그래서 대륙과 연결되고, 그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릴 것이다. 상상하면 실현할 수 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탁현민 작가의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먼저 읽은 것이 연설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됐다. 언제 어떤 배경에서 나온 연설문인지 어림하며 독서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께 성공한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에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 전 세계를 경탄시킨 나라 ...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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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한스미디어 펴냄

 

브렌델은 1931년생으로 2008년에 은퇴를 선언한 피아니스트다. '작가'는 피아니스트 브렌델이 느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다. 이 책은 '작가' 브렌델이 2012년에 썼다. 알파벳으로 챕터를 나누고 각각의 챕터를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에 관한 단상으로 채웠다.

 

피아노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조감할 수 있었다.

p162. S/ Stille, 영 silence
... 영어에는 listen = silent라는 흥미로운 글자놀이가 있습니다. 청취와 고요는 동일하다는 의미지요.

 

매일 아침 브렌델의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와 함께 조금씩 읽었다. 향긋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번역 좋았다 (번역 별 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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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청와대 일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1,826일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윤재관 지음
한길사 펴냄

 

살면서 청와대에서 일해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문재인 대통령 같은 인물과 일해보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이 책은 그런 귀한 경험을 담고 있다.

저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치르며 일했던 경험, 그리고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치르기 위해 실무를 맡아 일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펼쳐놓는다. 그건 저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험이고 자산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이번에 축적한 자산을 토대로 다음번 평화 시기에는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다. 그리고 장차 더 위대해질 것이다.

 

제1부 인연/ 인연의 출발/ p28
... 그 말씀에 난 가슴이 뛰었다. 그때 이분과 꼭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제1부 인연/ 5년이 흐르는 동안/ p40
그날 봉하마을의 추도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다시 봉하마을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 그것은 우리 참모들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무조건 유능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무조건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그런 주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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